“개인의 재능·능력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올 6월 기준 청년 실업률은 지난 1999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10.3%를 기록했다. 지난 2013년과 2014년 각각 7.9%와 9.5%를 기록한 실업률은 지난해 10.2%로 두 자리 수를 돌파했다.
그동안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실업률은 멈출 줄 모르고 곤두박질 치고 있다.
외환위기 여파로 인한 경제난과 글로벌 경기 위축 등이 이유로 꼽히지만, 청년들은 정부의 정책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저임금과 비정규직만 늘어나는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청년고용대책을 통해 취업한 일자리 중 비정규직이 42.4%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중 150만 원 이하의 저임금 근로자가 40.1%에 달한다.
‘청년이 미래’라고 말하면서 뒤로는 질 낮은 조건의 일자리와 적은 임금이 현실이다. 본보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인 청년실업에 대해 취업을 앞둔 대학생 등 8명의 청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 취업이란 대체 무엇인가? ‘취업대란’이 청년들에게 왜 이렇게 큰 고민일까.
△권순석= 취업은 나만의 인생을 시작하는 첫걸음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자신의 의지는 없었다.
특히 한국은 더 그렇다. 대학이 거의 의무교육처럼 당연시되는 문화다. 취업 자체는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리던 살리지 못하던 그 어떤 직업을 갖는다는, 진짜 내 인생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미국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어떻게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장으로, 직업으로 가지려 한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즐기다 보니 대성하는 사람이 나오고, 좋아하는 일만 고집하다 보니 더욱 빈곤이 몰려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자신의 꿈을 향한 청춘들의 도전은 미국 쪽이 훨씬 멋져 보인다.
취업은 내가 청년의 이름표를 떼고 청장년으로 중장년으로 성장해갈 때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순간으로 정의하고 싶다.
△최주빈= 최소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단계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돈이 있어야 뭐든지 할 수 있는 사회다. 생계유지도 포함되기 때문에 취업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의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집안 사정에 따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드는 부유한 가정의 자녀가 아니라면 그보다 훨씬 많은 청년이 돈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재열= 초등학교 1~6학년 때 우주를 좋아해 천문학자가 꿈이었다. 하지만, IMF로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마음 속에 안정적인 직장과 사회적 지휘를 원하게 됐다. 그래서 다시금 꿈을 꾸게 된 것이 바로 공무원이었다. 앞서 2명이 공통된 의견을 보인 바와 같이 직업은 말 그대로 내 삶을 영위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나는 그나마 첫 번째 꿈을 접고 두 번째로 원하는 직업을 갖게 돼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꿈만 가진 채 대학을 마쳤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꿈은 아니었지만, 치위생사를 목표로 대학생활을 했다. 3학년까지 취업 걱정도 없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가 국문학과임에도 승무원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전공과 무관하게 마음먹으면 다른 직업도 꿈꿀 수 있는데 잊고 살았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울타리 안에 갇혀만 있었다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늦게나마 동경의 대상이었던 승무원을 준비 중이다. 결국, 취업은 앞으로의 내 인생을 책임져줄 만한 경제력을 뒷받침하면서도 좋아하는 우선순위를 앞세운 것이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게 현실인 것 같다.
△모지은= 대학교 1학년생이다. 내가 원하는 대학이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을 목표로 했는데 다 떨어져서, 부모님과 갈등을 빚고 공무원 준비를 했다. 역시나 내 뜻이 아니다 보니 잡생각이 많아졌다. ‘왜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다. 관세직에 대해 그나마 관심이 좀 생겨서 무역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을 설득해 수능을 다시 보고 대학을 가게 됐다.
아직 1학년인 관계로 취업에 대해 뚜렷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꿈을 꾸고 싶다. 아직은 꿈만을 위해 공부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바를 취업으로 연결해 앞으로의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게 지금 꿈이며, 그게 곧 취업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김형진= 게임 개발자를 직업으로 갖고 싶다. 그래서 대학 학과도 정보미디어과를 선택했다. 원하는 직업군이랑 딱 맞긴 하지만, 막상 배우고 보니까 사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맞는데, 잘하는 분야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공부는 하고 있지만, 수학교사나 경찰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로를 고민 중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지, 잘하는 일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물론 선배나 부모님의 의견은 경제적인 이유로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취업이란 게 내게는 그저 먹고 살거리를 걱정하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마셔야만 하는 고배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 결정한 것은 이 사회가 바라볼 때 부끄럼 없는 직업, 쉽게 말해 돈이 되는 직업을 갖고 해당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으면서 하고 싶었던 그림 그리기 등을 병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도저히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그림 그리기는 현실에서 아무리 재능과 맞물린다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적어 그나마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우선 돈벌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소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안정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인턴 경험을 해보니 평생 이어가려면 적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하는 데에 대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결국, 취업에 대한 개념은 나와 미래의 나를 잇는 가교라고 생각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다르다.
저 같은 경우는 원하는 학과를 보고 대학을 결정했고, 진로와 관련된 공부와 캠프 등도 다양하게 경험했다. 전공도 살리기 위해 직업군을 선택해 현재 인턴십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공부하는 동안 즐거웠다. 성적에 맞춰 학교와 과를 선택하는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말이다.
△윤여정= 막연히 대기업을 가고 싶었다. 수학 과목을 잘해서 일단 현재의 학과를 선택했지만, 오고 나서도 대기업에 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어디를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다. 뚜렷한 목표가 없다 보니 공부도 잘 안 되고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뭘 하면 좋을지 봉사활동을 비롯해 대외활동을 많이 해봤는데, 딱히 재미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대학을 가기 위한 고등학교였고, 공대 역시 취업을 위한 학과인데, 결과적으로 취미와 생계도 별개다 보니 복잡하다. 여전히 전자 쪽 대기업을 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 최악의 취업환경, 그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권순석= 한국은 체면을 너무 많이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3D라는 단어의 개념도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미국에서는 정말로 목숨이 달린 위험한 분야나, 몸에 해로울 정도의 더러운 환경을 3D로 분류한다. 자기만족보다 남들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윤여정= 공사장 일당 8만 원.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당수 청년은 몸이 힘든 부분에 미리 공포감을 갖는 것 같다. 책상에 앉아 성공을 위해 공부만 하다 보니 힘든 일은 생각조차 못하는 교육환경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인 것 같다.
△박소린= 기성세대는 부정하고 싶겠지만, 우리나라에는 분명히 직업의 귀천이 존재한다. 알게 모르게 가정교육부터 학교교육까지 안정적이고 보란 듯이 내놓을 법한 직업을 가져야만 한다는 분위기를 조기 교육한다.
△최주빈= 직업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만 시키다 보니 대학은 일종의 자격, 누군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돼 버렸고 이로 인해 남자는 26세, 여자는 24세부터 취업과 미래를 위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김민희= 부모님을 비롯해 어렸을 때부터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알아볼 기회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반복적이며 주입식인 교육을 받고 어느새 성인이 돼버린다. 나와 내 미래를 위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교나 외부에서 그나마 접해볼 수 있는 진로상담, 직업체험 등은 허물뿐이다.
형식적인 프로그램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지은= 무조건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배워왔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기성세대의 생각과 사상 등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야 할 젊은이의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형진= 판사가 되고 싶어도 국·영·수를 공부해야 하고 어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온갖 필요없는 학문까지 섭렵해야 한다. 누구나 똑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야 한다.
■ 청년들이 생각하는 문제해결 방법은.
△김민희= 정부나 우리 사회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청년들이나마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틀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정재열= 경찰공무원 취업에 성공했고 만족하고 있다. 3년이나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느낀 게 있다. 내가 취업만 하면 내 주변이 모두 변할 줄 알았던 착각이 스스로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이미 이 사회에 대한 믿음이 없는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취업은 어렵지만, 주변 환경을 십분 활용해 돌파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권순석= 우선 청년들 스스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청년들 스스로 바뀌면서도 이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취업에 대한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청년들이 주로 하고 있는 쓸데없는 고민을 덜어줄 때, 우리 미래 즉 청년은 그만큼의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모지은= 기성세대의 청년들에 대한 존재 인정이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부장적인 사회적 문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는 무조건적인 어른 공경과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충분히 우수한 민족이며, 날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를 억압하는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의 생각과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주빈=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 어떤 회사든지 경력이 있는 신입을 원하는데, 초·중·고·대 모두 이론 학습을 위주로 교육이 이뤄져 있다. 이론은 가장 기본이 돼야 하겠지만, 실무·실습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교육 커리큘럼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박소린= 나는 조금 다른 의견이다. 교육은 어찌 됐던 이뤄져야 하며, 그게 잘되고 있던 조금 잘못 이뤄지고 있던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생활 안에서 작은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상하관계 등 다양한 간접경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교육조차 경제적 형편 등이 어려워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문제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기도 하고, 교육단계부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한다. 적어도 누구나 공평한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윤여정= 우리나라는 가진 게 인적 자원밖에 없다는 말을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교수님들한테도 자주 들어왔다. 인적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려면 이들이 가진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미 취업에 성공했거나 꿈을 위해 재취업을 준비하는 참석자가 있는데,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정재열= 우리나라에는 수만 가지 직업이 있다고 한다. 나는 경찰공무원을 택했지만, 공무원만 하더라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전문분야의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것저것 취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왔다면 공무원을 꿈으로 갖고 공무원 분야에서 자신의 꿈과 가장 맞는 진로를 고민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상당수 청년이 고민하는 ‘안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함께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질 못했고, 참견해야만 속이 풀렸다. 경찰관이 되기 전에도 112 신고를 수없이 했다. 결국, 경찰공무원을 택했고, 지금의 나 자신과 직업에 만족하고 있다. 현실에 부딪혀 꿈을 이루기 어렵다면, 어렵더라도 분야를 잘 골라 공무원에 도전해 볼 것을 추천한다.
△김민희=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고민이 많은 부분이 바로, 취업의 문이 좁다는 것이다. 승무원이라는 제한적인 직업이 큰 이유일 수 있겠지만, 한 번 실패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
하지만,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꿈을 위해 시간을 조금씩 투자한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 과감하게 나 자신을 믿고, 내 남은 길고 긴 미래를 위해 2~3년은 투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꿈과 취업이 연결돼 20~30년 미래가 행복할 수 있다면, 두려움은 물론 고통과 시련을 충분히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인엽 최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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