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격차 갈수록 커져… 빈곤층은 세계화 수혜서 배제될 것”
세계는 경악했다.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유럽연합의 분열인가’,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결속은 이제 무너지는 건가’…. 브렉시트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난무하는 가운데 지난달 22일 채형복 한국유럽학회장(51ㆍ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을 찾아가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브렉시트 사태는 세계가 당면한 문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며 “이주노동자 문제, 빈곤층의 정보격차 등을 자세히 살피고 인권과 평화를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끝에 그가 내놓은 답은 보편적이면서도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치였다.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답이다.
-유럽법을 전공한 전문가다. 브렉시트 사태의 원인,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우선, 역사적 측면에서 영국과 EU는 애증과 밀월의 관계다. 영국은 EU에 가입한 이후에도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국가들)에 가입하지 않는 등 EU와 거리두기를 해왔다. 유럽시민들의 더욱 완전한 자유이동을 보장하는 셍겐협약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EU에 속해 있되, 다른 노선을 일찌감치 취해 온 거다.
영국인들은 프랑스인이나 독일인과 달리 자기 나라를 유럽 일부로 간주하는 성향이 약하다. EU 전체를 하나의 공동 운명체로 간주하기보다는 독자적인 노선이 강한 상태에서 프랑스와 독일, 특히 독일 금융시장 부상에 대한 영국의 반감과 위기감이 작용한 거다. 이러한 인식이 경제적인 불안 등의 요소와 결부되면서 브렉시트 결정으로 이어졌다.
-통합의 수혜가 일부 기득권층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맞는 말이다. 유럽연합 가입으로 얻게 된 이동의 자유나 교육 혜택, 단일시장 접근권 등 ‘통합’의 수혜는 고학력층, 부유층 등에 집중됐다. 사회적 약자는 서서히 그 수혜에서 배제되면서 도태된 게 국민투표에서 많은 영국민이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이유다.
국민투표 결과를 보더라도 청소년층과 청ㆍ장년층은 EU 잔류를, 노년층은 탈퇴를 원했다. 애초 EU 통합과정에서 EU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영국의 사회주의 좌파들이 오히려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1993년 마스트리히트조약, 2009년 12월1일 발효된 리스본조약 등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입각한 유럽의 정책이 대폭 도입되면서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빈곤층,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고, 사회적 유럽의 정책이 배제됐기 때문이다.
-다른 EU 국가들의 추가 탈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금융시장 불안은 물론, 국제 정치체제에도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영국 이외 국가의 추가적인 탈퇴는 당분간 없을 거라 본다. 우리가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이나, 중국을 방문할 때에도 비자를 발급받고 번거로운 출입국 절차를 거쳐야 한다.
EU에 속한 국가들은 상품과 사람, 경제교역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영국은 1973년도에 EC(European Community)에 가입했는데, 이때 태어난 이들은 이제 40~50대가 됐다. 이들은 우리가 개별 국가를 방문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유럽연합 국가에서 한 단번도 느끼지 못했다.
학생들도 EU 국가들 사이의 여러 교환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유롭게 공부하고, 자격증도 다른 27개 국가에서 사용할 수 있다. 마치 국내시장처럼 말이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영국민들은 그동안 유럽시민으로서 느끼던 통합의 효과가 부정된다.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설정되고 이동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불편을 감수할 정도로 다른 회원국의 시민들이 동요할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유럽연합이 지향한 ‘유럽의 이상’, 즉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장 등이 한계를 드러낸 것은 아닌가.
과거 제1ㆍ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전쟁을 막고, 국제사회의 평화질서를 구축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범세계적으로는 유엔을 비롯해 관세협정인 가트(GATT),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의 기구를 설립해 국제질서를 구축해왔다.
EU는 지역통합 가운데서도 가장 선도적이고, 발전적인 모델이다. 국가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를 지향하는 국제협력을 구축해 왔다. EU가 지향하는 자유나 민주주의, 인권 존중 등은 마땅히 존중되고 보호돼야 한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를 가지고 EU를 평가하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브렉시트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제와도 연결돼 있는 것 같다. 브렉시트에 불을 지핀 난민 문제만 봐도 국제 정치ㆍ사회의 문제이지 않나.
그렇다. 이번 사태는 세계가 당면한 문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거다. 국민의 브렉시트 찬성에 결정적인 불을 지핀 난민 문제는 국제 정치사회 문제인 시리아 난민 사태가 그 원인이다. 또 영국의 저소득층이 난민의 대거 유입을 우려하는 배경에는 IS 사태가 있다.
국제사회의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가 엮인 상황이 영국 내부의 현재 상황과 맞물려 일시적으로 터진 거다.
또, 영국 내에서 사회적 빈곤층은 정보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유럽연합 통합에 관한 원칙을 마련해 놓은 EU의 미니헌법인 리스본조약은 전문이 몇백 페이지에 달한다. 이를 읽고, 이해할 시민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정보격차가 심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각국의 빈곤층은 세계화의 수혜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달라
인권, 평화의 가치와 이념이 존중받는 사회다. 국제사회는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의 가치, 이념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는 테러가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립과 분열은 난민을 낳고, 각국의 외국인 혐오, 일자리 문제 등을 촉발하고 있다. 국내에만 비춰봐도 남북 관계나 국내 사회나 대립과 분열이 지속하고 있지 않나.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를 간략하게 말해달라.
바로 의사결정시스템의 민주성과 합리성이 필요하다는 거다. 최근 정부에서 결정한 사드 배치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가 성주를 사드 배치 지역으로 일방적으로 정하고, 통보했을 뿐이다.
지금 영국은 브렉시트 의사결정 과정이 합리적이지 못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오는지 이미 우리가 보고 있지 않나. 또 한가지, 앞으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과정을 잘 지켜봐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 큰 잘못을 남긴 영국정부는 앞으로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협상과 의견 수렴 등의 과정을 진행할 거다.
이 과정이 잘 진행된다면, 영국 사회는 이번 사태를 통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도 있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마련 하는지 잘 지켜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채형복 학회장은…
프랑스 국립 Aix-Marseille III 대학교에서 유럽연합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한국유럽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가결된 6월23일 자문하는 전화를 받느라 하루 스케줄을 날려버렸을 만큼 유럽법과 유럽사회 전문가로 통한다. 대한국제법학회 이사,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국제경제법학회 이사와 부회장으로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법학공부로 서정적인 감정을 잃어버렸지만, 가끔 ‘시인 아닌 시인’으로 ‘시 아닌 시’를 쓰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정자연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