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위기 원인은 디플레이션… 유동성 공급 늘려야”
대외 변수에 쉽게 무너지는 한국 경제 역시 앞날이 녹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브렉시트를 맞닥뜨린 한국 경제는 앞으로 어떤 대응책이 필요할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달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46)를 찾아가 이에 대한 해법을 들었다. 성 교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된 국제금융 분야에서 단연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성 교수는 브렉시트 사태가 몰고 올 위기에 대해 예상 외의 속 시원한 답변을 들려줬다.
바로 “유동성 공급을 통해 선제 대응을 잘한다면, 브렉시트가 오히려 한국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선,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문제는 유럽연합의 두 가지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무역공동체, 하나는 재정연합의 성격이다. 무역공동체는 유럽연합 내 다른 국가와 자유무역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속해있으면서 자유무역을 추구하지만, 탈퇴해도 프랑스 등 인근 국가들과 무역을 이어갈 수 있다. 그게 인근 국가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무역공동체 측면에서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해도 크게 손해가 없다. 하지만, 재정연합 측면에서는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는 영국에 막대한 손해를 미칠 수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재정을 지원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난민 문제로 영국의 재정 부담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재정연합 측면에서 영국의 브렉시트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결국, 유럽연합에서 나가더라도 무역공동체는 이어갈 수 있다는 영국 국민의 확신이 우세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브렉시트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아니겠나. 특히 국내 금융시장에는 영국계 투자금이 많이 있어 우려된다.
그렇다. 우선 브렉시트의 단기적인 여파는 실물경제와 금융경제,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실물경제에서 보자면, 한국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 영국수출 비중은 1.4% 내외에 그친다. 영국 시장 수출 감소 등으로 발생하는 실물경제 타격은 크지 않다는 거다. 다만, 금융경제를 보면 일단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게 사실이다. 국내 금융시장에는 상당한 양의 영국계 자금이 투자돼 있다. 이들이 투자 모국의 상황으로 불안에 떤다면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영국의 경제 규모가 기본적으로 크고 미국ㆍ중국 경제와 연계되는 부분이 있어서 영국과 유럽 경제의 부정적인 상황이 우리에게도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줄 거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브렉시트 사태의 여파는 각국 중앙은행이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경제 위기가 될 수도, 혹은 경제 안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안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흥미롭다. 중앙은행이 어떤 대응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원화 약세를 유지하는 유동성 공급이 핵심이다. 미국과 유럽, 한국의 중앙은행은 브렉시트 사태 이후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뜻을 연이어 밝혔다. 실제로 당국의 그런 결정들이 이번 브렉시트의 여파를 줄였다. 유동성 공급은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실물경기 회복, 다른 하나는 금융시장 안정이다. 이는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국내 경제 정책을 살펴보면, 정부의 추경 편성 움직임과 금리 동결도 이 같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만약 금리를 인상하는 등 유동성 공급에 역행한 정책이 나오면 경제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타국 은행과의 금리 차이로 빠져나가는 돈을 잡겠다고 원화 강세와 금리 인상을 취하면, 현재 경제상황보다 미래경제 전망에 더 민감한 외국인의 투자자금이 빠져 나가게 될 것이다. 이는 지금 맞닥뜨린 한국 경제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한국 경제는 경기불황과 수출 부진, 일부 산업의 위기 등으로 어려움에 빠진 상태다. 이를 극복하는 데 걸림돌은 브렉시트가 아닌, 다른 요인에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 한국경제의 위기는 외부에서 발생한 게 아니다. 대내적 상황의 요인으로 발생했다. 바로 디플레이션이다. 국민은 물가가 오른다고 느끼겠지만, 실제로는 경기침체 영향으로 물가 하락 압력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소비와 투자를 계속 위축시킨다.
디플레이션은 생산자 물가지수를 통해 알 수 있다. 생산자 물가지수는 기업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말하는데, 지난 2007년 이후 생산자 물가지수가 오르지 않고 있다.
경제전망이 비관적인 탓에 수요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앞서 언급한 유동성 공급이 중요하다. 그리고 브렉시트 사태를 한국경제에 기회로 작용할 발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브렉시트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지난 7월 26일과 27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상을 연기했는데, 그 배경에는 브렉시트 사태가 있었다. 미국 금리 인상 시점이 연기되면서 한국 경제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브렉시트 때문에 입을 실물경제의 타격은 크지 않다.
오히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브렉시트 여파로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미뤘다는 것이 중요하다. 덕분에 국내 경제 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고,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때까지 시간을 벌게 됐다. 브렉시트가 경제적 타격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경제의 대외적인 여건을 좋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때까지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가.
선제 조건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정부의 유동성 공급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동성을 공급하면 금리가 낮아진다. 이는 물건 가격의 상승을 의미한다. 가격의 상승 흐름은 투자와 소비를 끌어낸다. 투자와 소비 활성화로 낙관적인 경제 전망이 생긴다면, 자금 유출 우려도 덜 수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이 연기된 지금, 유동성 공급에 대한 논의가 더 확장돼야 한다.
-끝으로 환율 질문을 하겠다. 유로화는 그동안 유럽연합에서 위상을 확고히 하며, 미국 달러를 위협하는 대체 수단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앞으로 달러와 엔화, 유로화 등 각국 통화의 위상은 어떻게 바뀔 것으로 전망하는가.
이번 브렉시트 사태는 기축통화로서 지위는 달러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불안해진 국제금융투자자들이 파운드와 유로 자금을 달러로 집중해 이동시키고 있다.
엔화는 2차 아베노믹스에 달렸다고 보면 된다. 지난 7월10일 일본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2차 아베노믹스 단행이 예고된다.
평화헌법 같은 민감한 문제가 있었음에도 자민당이 압승한 것은 경제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2차 아베노믹스는 엔화를 약화할 전망이다. 약세를 만드는 과정에서 엔화의 위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후 2차 아베노믹스를 통한 경기 회복으로 국제 투자자들은 엔화를 또다시 인정하게 될거다.
성태윤 교수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경제팀에서 부연구위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 조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모교인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증권학회에서 우수논문상과 연세대 상경ㆍ경영대학 동창회가 연구 업적이 우수한 상경ㆍ경영대학 교수에게 주는 초헌학술상도 수상했다. 지난 2015년에는 한국경제학회가 만 45세 미만 경제학자 중 탁월한 연구업적을 보인 학자에게 수여하는 청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여승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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