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1 데나리온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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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포도원 주인이 하루 일당으로 1데나리온(당시 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주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인력시장에 나가 일꾼들을 고용했다. 한데 이들이 일하고 있는 사이에, 9시쯤 주인은 다시 인력시장으로 나가 일꾼들을 더 데려온 것이다. 그러더니 12시에도, 오후 3시에도, 심지어 5시에도 또 데려온다.

 

저녁 6시, 드디어 정산할 시간이 되었다. 주인은 5시에 와서 일한 일꾼들부터 차례대로 1데나리온을 주었다. 새벽부터 와서 일한 사람들은 내심 좀 더 받겠거니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한데 야속하게도 주인이 똑같이 1데나리온을 주는 거라.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투덜거리며 따졌다. 그러자 주인이 타일렀다. 당신들도 애초에 1데나리온을 받기로 하지 않았는가, 약속대로 주었는데 뭐가 잘못인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내가 후한 것이 그리도 비위에 거슬리는가.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은 당시 영국사회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에 ‘성공’한 만큼 골고루 잘 사는 사회가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가난한 사람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 문제에 책임지기는커녕,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무능과 게으름으로 돌리는 비겁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상류층이건 빈곤층이건 모두가 돈의 노예가 되어 부를 쌓는 데만 골몰하는 사회가 그의 눈에는 참으로 추악하게만 보였다.

 

그이보다 한 해 앞에 태어난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영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답을 구했다. 그러나 러스킨은 그 노선을 따르지 않았다. 생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려면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자기를 매혹시킨 성경 이야기, 곧 마태복음 20장에서 영감을 받아 대안경제학을 제시했다. 그의 생각이 담긴 책이 바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다.

 

그에 따르면, 이웃이 가난 속에 방치되어 있는데도 자신의 이윤추구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근대경제학은 ‘암흑의 학문’이다. 이 불의한 경제학을 구원하는 길은 도덕과 영성밖에 없는데, 이를테면 포도원 주인이 보여준 대로 ‘자진해서 손해 보기’를 기쁘게 감내하는 것이 진정한 경제활동이란다.

 

포도원 주인, 곧 자본가로서는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주는 것이 엄청난 손해임에 틀림없다. 꼭두새벽부터 와서 12시간 일한 노동자에게 1데나리온을 주기로 했으니, 그 이후에 와서 일한 사람에게는 차등지급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테다.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그런 자본주의 원리에 반기를 든다. 나중에 온 사람도 삶의 존엄성을 누릴 수 있을 만큼 똑같이 대우를 받아야 한단다. 포도원 주인은 자기도 기쁘게 손해를 끌어안겠으니, 더 많이 일한 노동자도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너그럽게 먹으라고 충고한다.

 

‘국제시장’ 세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저성장 시대에 태어난 죄로, 잉여니 비정규직이니 알바니 온갖 굴레에 매여 제대로 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들으면 환호하겠다. 우리 사회의 러스킨들은 다 어디로 갔나. 푸르른 5월,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로 은근슬쩍 넘어가기엔 청춘의 상처가 너무 깊다.

 

구미정 숭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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