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하얀 거짓말

가정의 달 5월은 가족모임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가족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간의 정과 사랑을 나누는 기회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족모임이 종종 갈등과 반목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소중한 존재인 만큼 서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 간 우애의 가치는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공동체적 규범이다. 그래서 제사, 어버이날 등의 가족모임 참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개인주의적 가치의 상승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사회의 극단적 경쟁은 가족이나 주변사람들보다 자신을 먼저 챙기게끔 유도한다. 즉 공동체적 규범과 개인적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을 우리는 무수히 경험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얀 거짓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얀 거짓말은 그리스 신화 속 조각가 이야기를 다룬 희곡인 ‘피그말리온(Pygmalion)’에서 유래한다.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자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여인상에 생명을 주게 된다. 이처럼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을 심리학 용어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불치병 환자에게 곧 나을 수 있다는 선의의 거짓말로 희망과 믿음을 주어 병을 낫게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즉 하얀 거짓말은 선의의 거짓말로서 상대방에게 위안과 힘이 되고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도모하는 배려적 소통방식이다.

 

그런데 하얀 거짓말은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기능으로만 사용되지는 않는다. 종종 자신의 개인적 목적을 효과적으로 관철시키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친구에게 별 의도 없이 ‘밥 한번 살게’, 또는 아내에게 사실과 다르게 ‘이거 할인해서 산거야’ 등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문제는 이런 하얀 거짓말이 가족 내에서 너무도 일상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맞벌이 하는 며느리가 제삿날, 명절 전날 유난히 야근이 많고 아들은 외국 출장이나 회사에 중대한 일이 많은 이유이다. 하얀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들은 가족모임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의사표현보다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얘기하는 것이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내면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의도가 깊숙이 깔려있다.

 

이런 의도가 하얀 거짓말이라는 포장을 두르고 나타난 것이다. 배려의 포장을 두른 개인의 이기심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가족구성원 간의 신뢰는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이러한 역기능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가족모임을 의무적 행사가 아니라, 정서적 교류를 통한 행복을 키우는 기회로 여겨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가족 간의 처신에 대한 고루한 가치관도 바뀔 필요가 있다. 중요한 날이니 무조건 참석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당사자의 입장이나 상황을 고려하여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현해 볼 필요도 있다. 이것이 오히려 서투른 거짓말보다는 훨씬 더 큰 이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해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굳이 가족 내에서까지 하얀 거짓말로 우리를 포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족 속에서 정신적 자양분을 찾고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조용길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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