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재위하자 정세를 ‘나라가 큰 병을 앓는 사람처럼 원기가 다 빠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개혁이 필요했고 그 수단이 바로 천도였다.
오랫동안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의 저항에도 정조는 노론의 근거지인 한양(漢陽)을 벗어나 철저한 개혁, 새로운 개혁을 도모했고 실행에 나섰다. 정조는 천도지로 수원을 선택했고 이곳에 화성을 지었다. 화성이 개혁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수원을 중심으로 한 화성, 오산은 그렇게 정조와 인연을 맺었고 현재도 그의 개혁정신을 기리며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지난 4월13일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4선에 성공, 당당히 중진 반열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오산)이 정조의 정신과 통치이념을 계승하는 ‘정조특별시’를 주창하고 나섰다. 본사를 방문한 짧은 시간에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의 구상은 대략 이렇다. 정조의 숨결이 살아있는 수원ㆍ화성ㆍ오산을 가상의 정조특별시로 묶어 각 지자체 간의 이해와 갈등 요소를 제거하면서 상생 협력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굳이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제도적 틀을 앞세우기 전에 3개 시가 합쳐 정조특별시라 명명하고 문화, 체육, 교육 시설 등 기본적인 기반시설들을 공유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현재 산수화(오산ㆍ수원ㆍ화성의 정치인, 종교인, 학자들의 모임)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각 지자체가 약간의 재정적 지원만 하면 산수화를 중심으로 정조특별시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안 의원의 생각이다.
5~6년 전 이미 수원ㆍ화성ㆍ오산은 통합론에 휩싸여 심한 갈등을 빚은 끝에 무산되는 경험을 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서서도 행정구역 개편 논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낳았지만, 결국 경기도 내에서는 단 한 곳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은 각 지역의 정치권과 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기주의와 감정의 골이었다.
안 의원의 정조특별시 제안 역시 초반부터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수원ㆍ오산은 일단 긍정적인 모양인듯하다. 결국, 정조특별시는 광역시 추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시민들에게 더욱 질 좋고 풍족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려 그동안 통합을 통한 광역시를 꿈꿔 왔던 만큼 첫 단추를 끼우는 모양새는 다르지만, 결과는 같을 수 있다는 기대를 표출하고 있다.
화성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아직도 함백산메모리얼파크 조성, 행정구역 편입 등 현안을 둘러싼 수원시와의 갈등이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 정조특별시라는 가상의 행정체제로 상생이나 통합을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며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3개 지자체가 모두 환영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다. 분명히, 정조특별시는 시간을 두고 심도있는 논의와 구체적인 추진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산수화 시민들의 바람이 어디에 있는지 좀 더 빨리 파악해 달라는 것이다. 지난 통합론이나 행정구역 개편과 같이 변죽만 울리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갈등의 요소만 또다시 남긴다면 자칫 정조문화권의 통합이나 상생은 두 번 다시 꿈꾸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제안자인 안민석 의원의 발 빠른 행보가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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