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양철호 프로배구 수원 현대건설 감독

“사령탑 데뷔 2시즌만에 우승… 꿈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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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선수는 아니었다. 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려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보다 밝게 웃는다. 프로배구 수원 현대건설의 챔피언 등극을 이끈 양철호(41) 감독의 이야기다.

 

그는 사령탑으로 데뷔한지 2시즌 만에 현대건설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5-2016시즌 V리그 여자부에서 5년 만에 되찾아온, 값진 우승이었다.

양철호 감독은 “우승한 뒤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아직도 꿈만 같다”고 말했다.

Q 사령탑으로 데뷔한지 두 시즌 만에 현대건설의 명가재건에 성공한 소감은.
A 시즌을 치르면서 전술적인 부분을 많이 바꿨는데 그 부분을 잘 이해하고, 잘 따라준 선수들에게 너무 고맙다. 상대팀의 출전 선수에 따라 매경기, 매세트 마다 수시로 전술을 변경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선수들이 묵묵히 잘 견뎌줬다.

 

매일 상대팀들의 비디오 분석을 통해 데이터를 관리하고 맥을 짚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어 너무 뿌듯하다. 선수들도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Q 화려한 전력을 지닌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아니었지만 지도자로 변신하며 우승팀 감독이 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A 대학시절 우승도 많이 했지만 주전으로 활약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 로만 우승의 기쁨을 느껴봤다. 우승은 같이했지만 우승할 때 희열은 경기뛴 선수들의 몫이고, 서포터스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코치시절에도 우승을 해봤다. 그러나 코치로서의 우승과 감독으로서의 우승은 받아들이는 체감 자체가 정말 다른 것 같다.

 

우승에 대한 의미도 쾌감도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경기가 끝나기 전 우승을 직감했다. 마지막 3세트에서 점수를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무실세트 우승을 예상했다. 그때 지금까지 고생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라는 말처럼 순간적으로 엄청 빨리 스쳐갔다. 

또 마음 한편으로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기분을 이제는 느껴보겠구나 라는 뿌듯함과 기쁨, 행복감이 밀려왔고, 그 여운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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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대건설은 매년 개막을 앞두고 상위권 팀에 꼽힌 반면 최종 성적은 한동안 좋지 못했다. 올 시즌 챔피언에 등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A 첫째는 세터 염혜선의 토스워크라고 생각한다. 모든 선수들이 제몫을 다했다. 수비에서 잘 받아줬기 때문에 염혜선이 현란한 토스를 할 수 있었고, 현란한 토스를 해줌으로써 공격수들도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토스는 공격수 머리위에 공이 있을 때 자유자재로 공격이 가능하다. 흘려보내는 공이나 짧게 떨어지는 공은 공격의 방향이 한정돼있기 때문에 상대 수비로부터 쉽게 막힌다. 올 시즌 염혜선은 지난해와 달리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한 템포를 쉬면서 최적의 볼배급을 해준 덕분에 공격수들이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염혜선이 가장 큰 일을 해줬다. 또 주장 양효진과 한유미도 동료들이 흔들리지 않게 잘 이끌어줬다.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지만 배구도 수비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포인트를 내야 승리하는 스포츠다. 베테랑 선수들이 경기력 외의 역할을 정말 잘해주지 않았나 싶다.

Q 여자팀이 남자팀보다 배는 힘들다는 게 지도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여자선수들이 남자 선수들보다 개성이 강해 고충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리더십으로 선수들과 조화를 이뤘나.
A 선수들이 말하기를 어떤 부분에 대해 부족한 점이 있다고 판단이 들면 끊임없이 말을 한다고 한다. 식사를 할 때도, 테이핑을 할 때도, 신발 끈을 묶을 때도 마주치기만 하면 ‘어제는 평상시보다 훨씬 좋더라’, ‘조금만 더위에서 때리면 좋겠더라’ 등 나도 모르게 자꾸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선수들이 귀찮아서라도 잘하려고 노력 한다고 들었다.(웃음) 여자팀을 맡아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지만 선수들의 심정의 변화가 있을 때 선배들, 후배들 등 그룹을 모아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카톡과 문자도 많이 주고 받는다.

 

운동선수들이고 성인이지만 여성이다. 디테일한 것을 좋아하고 상황에 따라 말 한마디, 마음 씀씀이 하나에 감동하고 진심을 믿어준다. 여자팀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얻은 교훈과 노하우를 우리 선수들에게도 접목하고 있다.

Q 챔피언 등극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나날을 보냈나.
A 경기가 끝나고 정말 많은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우승 당일은 너무 많이 울어서 다음날 눈이 퉁퉁 부었다. 선수들이 두꺼비라고 하더라. 축하도 너무 많이 받았고, ‘우승 턱’을 내느라 너무 바쁘게 지냈다. 아직도 정신이 없다.

Q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희로애락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지도자 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를 꼽는다면.
A 사실 코치시절에는 원래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못 느꼈고, 지난해는 아무것도 모르고 감독직을 맡아 힘든지 잘 몰랐다.

올 시즌에는 전반기에 생각지도 못한 경기력이 나오면서 승승장구하며 선수들과 믿음을 많이 쌓았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갑자기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고,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올해는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심정을 어디에 말할 수도 없다보니 너무 힘들고 지쳐서 감독직을 내려놓을까도 고민했다. 힘든 기색을 선수들에게 표현할 수도 없고, 경기가 안 풀린다고 짜증을 낼 수도 없고, 시련을 이겨내려고 발버둥 쳤을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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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어머니 이야기에 눈물을 보였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큰 것 같다.
A 우승을 확정지을 때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1990년대 초에 큰 인기를 끈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은 집안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인 귀남이와 후남이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는데 우리 집안의 귀남이였다. 운동 때문에 집에서 떨어져서 살다보니 4남매 중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집에 갈 때면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밥이 남아있어도 어머니는 항상 새 밥을 지어주셨다. 2014년 강원도 속초 전지훈련 중 어머니가 췌장암 말기라는 전화를 받았다. 선수들 식사를 챙겨주고 혼자 숙소로 들어와서 화장실 물을 틀어놓고 몇 시간을 통곡했다. 

25년 배구를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 지금도 어머니 얘기를 하니깐 눈물이 나는데 너무나 과분한 사랑을 어머니께 받아서 애틋한 마음이 크다. 어머니께 우승컵과 감독상을 바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Q 이제 정상을 지켜야 하는 자리에 있다. 향후 계획은.
A 팀에 부상선수가 많아 다른 구단보다 휴가를 많이 부여했다. 2년 동안 경험을 통해 느낀 것도 많고 공부도 됐기 때문에 구상은 이미 끝냈다. 먼저 선수들의 부상관리를 최우선으로 하고, 나머지 부족했던 단점들을 비시즌 때 많은 시간을 투자해 보완할 계획이다.

 

팀이 챔피언에 올랐기 때문에 선수들 안에서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 등 긍정적인 분위기가 많이 조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 올해는 FA 선수가 많다.

 

영입보다는 양효진, 황연주, 한유미, 김주하 등 우리팀에서 FA 자격을 취득한 4명의 선수에 대해 문단속을 잘하는 것이 우선이다.

Q 다음시즌 팬들에게 어떤 배구를 보여줄 것인가.
A 2015-2016시즌 6개 구단 중 가장 빠른 플레이를 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스피드 배구를 구사하는 팀은 아니다. 빠른 배구를 하지만 선수 전체가 모두 공격을 할 수 있는 토털배구를 했는데 포스트시즌에서 잘 맞아떨어졌다.

 

지금처럼 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모든 선수가 함께 움직이는 토털배구를 지향할 것이다. 또한 팬들과 함께 즐길 수 있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배구를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홍완식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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