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는 사람들] 토론연극 ‘미모되니까’

‘미혼모’ 숨지마세요 ‘미모’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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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20일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토론연극 ‘미모되니까’가 서울 시민청 무대에 올랐다. 연극에 참여한 7명의 미혼모들과 관객들은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낳으실래요, 지우실래요” “키우실래요, 입양보내실래요” 임신부터 육아까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선택을 강요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미혼모’. 미혼모는 말 그대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은 여자를 말한다. 

이들은 아이가 생기는 그 순간부터 생명의 신비, 경이로움, 축복은 누릴 새도 없이, 사회로부터 ‘낳을 것이냐, 지울 것이냐’ ‘키울 것이냐, 입양 보낼 것이냐’라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낳고, 기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결혼도 안한 여자가 혼자 애를 키우는 것에 쏟아지는 시선은 곱지 않다. 아니, 매우 따갑고 아프다. 

여기에 미혼모라는 꼬리표에 취직은 쉽지 않고, 지원해줄 실질적인 제도도 미비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이들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문제로 여기며 숨겨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편견을 깨고,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자신을 위해 무엇보다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의 아이를 위해 조금씩 세상을 향해 걷고 있다. 

■ 미모(美母)들의 이야기

지난해 11월20일 서울 시민청 내 바스락홀에는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토론연극 <미모되니까>.

 

조금 특이한 제목, 속을 들여다보면 그 뜻이 참 깊다. 아직 엄마가 아닌(未母), 아름다운 엄마(美母)들의 이야기란 뜻이다.

 

연극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 경제적 어려움, 불안한 미래와의 싸움에서 오로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어린 엄마 7명의 이야기를 그렸다.

 

전문 배우와 진짜 엄마들이 함께 만든 연극은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올려놓았다.

 

가족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미안함과 사랑의 메시지, 몰래 아기를 낳고 찾아갔지만 말없이 감싸 안아준 할머니의 사랑, 가족들의 사랑 속에 축복받는 옆 방 엄마와 달리 홀로 출산을 기다리는 마음, 일도하고 친구도 사귀고 싶지만 좀처럼 받아주지 않는 사회, 미혼모라는 딱지로 죄인 아닌 죄인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100여분의 시간동안 잔잔하게 이어졌다.

 

가끔은 날카롭고, 가끔은 애잔하고, 가끔은 서글픈 이들 삶의 작은 부분을 함께 한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자신도 모르게 쏟았던 시선에 대한 미안함에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연극 이후 이어진 토론 시간에서는 김현정 연출가의 진행으로 관객이 직접 참여해 극의 상황을 바꿔보는 시간을 가졌다.

 

관객들은 미혼모가 돼 나 몰라라 하는 남자친구 혹은 시어머니를 상대하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돼 아이에게 “왜 아빠가 없는 게 나쁜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라면 이렇게 대처했을 텐데’라고 자신 있어 하던 관객은 도리어 “누구 아이인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쏘아 붙이는 남자친구에게 당황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아이를 지우라고 찾아온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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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성장하다

100분짜리 연극에서 관객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공연 관람 후 이어진 설문조사에서 ‘미혼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변화에 도움이 됐는가’란 질문에 300명의 관객 중 96.9%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 사람들은 그 이유에 대해 ‘원래 편견이 없었다’고 답했다.

 

‘미혼모에 대한 시급한 지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이해와 관심’이 52.5%로 가장 많았고, ‘법과 제도의 보완’ ‘경제적 후원’ ‘가족들의 이해와 사랑’ 순으로 뒤를 이었다.

 

연극이 이룬 큰 결실을 증명한 셈이다.

무엇보다 무대에 오른 7명의 미혼모들의 삶에 가장 큰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혹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수군거리진 않을까’ ‘나는 괜찮은데 우리 애가 욕을 먹진 않을까’ 고민하던 이들이, 무대를 계기로 세상과 대면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엄마 A씨는 “가족과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는 나에게도 새로운 가족(아이)이 생겼다”라며 “아이를 위해 용기내고 싶었다”고 울먹였다.

 

이어 “관객들의 반응에 아이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엄마 B씨도 “연극을 하면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 조만간 아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부모님께 보여드리러 갈 것”이라며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관객과 엄마의 변화 말고도 연극이 발휘한 힘은 또 있었다. 바로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후원.

 

연극을 관람하고, 연극 소식을 들은 일부 개인들과 업체들이 후원의 손길을 내민 것. 아이들을 위한 기저귀, 분유 등 육아용품과 쌀, 집기류 등 생활용품을 지원하고 실제 한 엄마가 정규직으로 한 업체에 취직하기도 했다.

 

■ 더 많은 미모들에게 닿기를

연극은 철저한 준비로 탄생했다.

서울시예비사회적기업으로 다양한 나눔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명랑캠페인’이 미혼모들의 당당함을 회복하고, 사회구조 속에서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자 연극을 기획했다.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는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힘든 집단이 미혼모”라며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서울의 미혼모 시설과 연계해 연극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극에 앞서 5개월간 워크숍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는 “엄마들을 위한 연극 놀이 및 교육치료 등이 진행됐다. 프로그램에는 30여명의 엄마들이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이 겪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20회가 넘었을 때 대본이 나왔고, 연극에는 7명의 엄마들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의 눈에 비친 이들은 누구보다 떳떳한 엄마였다.

 

오 대표는 “엄마들은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무시에도 아이가 있어 꿋꿋했다. 때론 가족이 그리워 눈물짓고, 힘든 육아로 자신의 생활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자신이 받은 고통과 아픔을 물려주기 싫어 새 출발을 향해 나아가는,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책임 있는 엄마일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미혼모 가구가 16만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더 이상은 사회의 문제로 치부하고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연극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계획이다.

 

그는 “누구나 계획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연극이 사회의 차별과 편견의 장벽 앞에 서도 생명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길 원한다”며 “함께 토론해 가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관점으로 미혼모 문제를 풀어나가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송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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