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는 사람들] 北이탈주민 김선미씨의 남한 정착기

꿈·희망 그리고 자유… 대한민국서 ‘행복의 날개’ 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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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한민족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이들이 있다. 자유를 찾아 가까운 길을 두고 제3국을 통해 힘들게 남한에 정착한 이들. 

바로 탈북자다. 70년이라는 긴 분단의 역사를 방증하듯,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의 상당수는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돕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희망을 찾는다.

“저의 꿈은 1호 북한이탈주민 식품 명장이고 저는 이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 달려갈 겁니다”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온 지 6년차인 탈북자 김선미씨(36·여ㆍ가명)는 식품 명장으로 꼭 성공하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녀는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이곳은 러시아와 중국이 인접해 춥기로 유명한 곳이다. 지난 2006년 그는 생계를 위해 중국으로 탈북한 뒤 호텔에서 4년간 근무했다. 그는 이곳에서 요리 운반 등의 보조업무로 시작했지만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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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정착한지 6년차인 탈북자 김선미씨가 그동안 남한에서 취득한 자격증을 보이고 있다. 오승현기자
그러던 중 그는 낯설고 힘든 타국생활을 접고 자유를 찾아 2009년 대한민국 품에 안기게 됐다. 한민족, 한문화, 같은 언어 등 모든 것이 같아 보였지만, 분단된 70년이라는 시간만큼의 간극은 컸다. 한국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는 정작 현실에 부닥치니 어려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는 “경기도에 집을 배정받고 기쁜 마음도 잠시, 이곳이 어디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아무것도 모르는 사실상 장님이었다”며 “부모님이라도 있었으면 투정이라도 했겠지만 나는 이 모든 현실을 스스로 이겨내야만 했다”며 그 어려운 시기를 회상했다. 그렇게 방황의 시기를 겪다가 우연히 한 카페에서 고구마 케이크를 먹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는 “케이크의 노란 빵가루가 나를 계속해서 쳐다본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날 먹은 케이크의 진한 향과 맛, 디자인 등이 계속해서 뇌리에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과거 중국에서 요리 경험이 있던 터라 과감히 제빵에 도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형편은 여유롭지 않았고 제과 관련 용어 상당수가 영어로 이뤄져 그는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게다가 그는 첫 제빵자격증 시험에 낙방했다. 하지만 제빵 학원 강사와 용인동부경찰서 직원들이 수시로 그를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힘을 얻은 김씨는 하루에 잠을 4시간씩만 자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 최우수상 등을 받고 제빵 자격증을 취득하고 국내 대형 한 제과회사에 취업하게 됐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인 식품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전문지식이 필요함을 느꼈고, 이에 대학에 진학한 뒤 박사과정까지 밟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후 김씨는 밤늦게 퇴근해도 항상 학원과 도서관을 다니는 1년여간의 ‘주경야독’ 생활을 했고, 결국 경기도 내 한 대학의 외식조리학과 합격이라는 보상을 받았다. 

그는 학업에 올인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은 그만뒀다. 김씨는 “석사, 박사과정까지 밟아 꼭 북한이탈주민 1호 식품명장이 돼 다른 탈북자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이어 “지금은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도 끝까지 꿈을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빛을 발휘할 날이 있을 것”이라며 다른 탈북자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탈북자 지원 정책

임대아파트 제공·학교 등록금 면제… 취업상담·자격증 취득 도와

탈북자에게는 남한 사회 조기 정착을 위해 다양한 정착지원이 이뤄진다. 4일 통일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는 총 2만6천416명이며 이중 경기도는 7천647명(30%)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들에게 지원되는 분야는 5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정착지원금이다. 과거 한번에 제공했던 정착지원금으로 인해 북한이탈주민 상당수가 사기나 범죄 등 피해를 입는 문제가 잇따랐고, 결국 최근에는 직업훈련 교육 결과나 자격증 취득 등과 연계돼 분할 지급되고 있다. 현재 1인 세대 기준으로 700만원의 기본금이 지급된다. 


둘째는 주거지원이다.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면 탈북자에게 바로 임대 아파트가 제공된다. 주거지원금은 1인 세대 기준으로 1천3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지방에 거주를 원하면 지방거주 장려금으로 최대 260만원이 추가로 지원된다.


셋째로는 취업지원이다. 노동부는 북한이탈주민에게 직업훈련 기간 중 훈련수당을 매달 20만원씩 지급한다. 또 북한이탈주민을 채용하는 사업주에게 급여의 절반(50만원 한도)을 최대 4년간 지원해 채용을 독려한다. 또 이처럼 직업훈련, 자격증 취득, 취업장려금 등을 포함하면 최대 2천510만원이 제공된다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이다. 


넷째, 사회복지지원이다. 북한이탈주민은 모두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지정, 1인 세대에 매달 50만원이 지원된다. 또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로 선정돼 본인 부담없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더욱이 노령과 장애, 장기치료를 받아 최대 1천540만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부문에서는 대학 특례 입학이 가능하며 중·고등학교, 국립대 등록금이 면제되고 사립대의 경우 등록금의 50%를 보조해준다. 

이영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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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한꿈학교’ 김두연 교장

“웃음 되찾는 아이들 보면 뿌듯”

“탈북 청소년이 이곳에서 웃음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제 가슴은 뜁니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한꿈학교 김두연 교장선생님. 한꿈학교는 2004년 ‘한민족 통일의 꿈’을 의미하며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심리 치료는 물론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해 검정고시반 등을 운영하는 의정부에 있는 대안학교다. 

김교장은 지난 9월 교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탈북 청소년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평범한 교사였다. 그러던 중 2002년 중국에서 우연히 탈북자들을 입양해 도와주는 한 선교사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선교사를 통해 만난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자유와 생존 등을 위해 북한을 탈출했지만, 첫 도착지인 중국에서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그는 같은 동포로서 탈북자들을 보살피고 돌봐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겼다.


그 후 그는 학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다가도 방학 때만 되면 중국으로 넘어가 탈북자들을 위해 인권 교육 등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가 애지중지하며 힘들게 한국으로 보낸 한 탈북 청소년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그 이후로도 민주주의와 자유에 적응하지 못한 채 탈선의 길을 걷는 수많은 탈북자를 목격했다. 결국 지난 2012년 그는 경제가 어려운 시기임에도 인권 전도사가 되겠다는 꿈을 실현하고자 안정적인 교사를 그만뒀다. 


이같은 간절함이 통했는지 그는 이곳 한꿈학교 관계자의 제안을 받고 지난 9월에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자유’라는 꿈에만 의지해 대한민국의 땅을 밟았지만, 이념 등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의 삶에 접어든 것이다. 


그는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해 행복하고 성공한 탈북자들을 길러내고, 그들이 또 다른 탈북 청소년의 멘토가 될 수 있도록 온 정성을 쏟겠다”며 남다른 각오를 내비쳤다. 


이영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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