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물 들어왔으니 노 저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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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가가 또다시 긴장하고 있다. 학과 구조조정의 거센 조류에 일부 경기도 내 대학에서는 총학생회까지 단식으로 맞서고 있다. 이번의 조류는 교육부의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사업’(이른바 프라임 사업)으로 대표된다.

정부가 밝히고 있듯이 ‘사회수요 중심의 자율적인 대학 체질개선’을 위해 사회적 요구와 산업수요에 맞춰 학과를 통폐합하는 조류를 부정하기 어렵다. 아니 오히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 정말 들어오긴 왔느냐이다.

 

지난 15일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은 사업 추진의 근간으로 ‘2014~2024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전망’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료를 보면 물이 들어오긴 온 것 같아 보인다. 자료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향후 10년간 문과는 일자리가 모자라고, 반면 이과는 일자리가 남는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친절하게 숫자까지 꼼꼼히 제시하고 있다. 4년제 대학 졸업자 기준으로 인용해보면 앞으로 10년간 인문계열 10만 여명, 사범계열 12만 여명, 사회계열 21만 여명이 취업난에 허덕이고 공학계열은 졸업자 21만5천 명가량이 더 필요하다. 

더불어 앞으로 10년간 자연계열은 6만 명 가까이가 초과 공급되고, 의약계열은 4천여 명이 초과 수요된다. 

이 전망치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6월에 협의체를 구성한 뒤 전문가 의견, 설문조사, 인터뷰, 전문가 포럼, 전문가 T/F회의를 거쳤다. 보고서에는 대학전공별 인력수급전망은 최초로 이루어진 만큼 한계점이 있고, 또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애써 밝히고 있다.

 

그런데 정말 물이 들어왔을까? 언론에 발표된 전망치를 보면서 필자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기존에 필자가 접했던 자료들과 작지 않은 괴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학에서 한국경제론을 다룰 때 자주 사용하는 자료가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표한 ‘2012 국제지표로 본 한국교육’이다. OECD에서 매년 회원국의 교육상황을 비교분석한 ‘Education At a Glance’라는 자료를 발표하는데, 이들 연간 자료들을 일일이 보기에는 어렵기에 요령 있게 요약된 교육개발원의 책자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료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한국 대학의 전공별 입학생 분포를 보면) 사회과학, 경영 법학에 대한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며 과학과 같이 순수 학문 분야를 전공한 학생 비율도 OECD평균이나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국가과학 기술 발전을 취약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순수 학문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자료를 좀 더 자세히 보면 한국의 공학계열 비중은 35.4%(남성 기준)로 OECD 평균(25.0%)이나 제조 강국인 독일(29.9%)과 일본(25.2%)을 이미 크게 앞서고 있다.

반면 한국의 사회과학, 경영, 법학계열 비중은 20.5%로 OECD평균인 31.4%나 독일의 23.7%, 일본의 33.9%를 하회하고 있으며, 과학계열 비중(9.2%)은 일본(3.1%)을 앞서나 OECD평균인 13.3%, 독일의 15.5%를 크게 밑돌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분석은 OECD가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하는 내용이기에 한국교육개발원을 탓할 일도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필자만의 상식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부에 보고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0년 분석 자료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

“(전망해보면 2008~2018년 중 대학) 전공별로 공학계열 초과공급(12.0천명), 인문계열 초과수요(-7.6천명) 등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기술혁신 문제를 다루며 한국의 대학졸업 인력의 수급불일치와 관련하여 OECD에서 자주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급기술 분야에서 학사 학위자가 지나치게 많고 석사나 박사 학위자가 지나치게 적다는 점이라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쯤 되면 물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 아니 오히려 물이 들어왔느냐를 따질 때가 아니라 장소를 제대로 잡기는 한 것이냐는 생각에 미친다. 지금 배를 띠우는 곳은 우리가 추격자(follower)로서 늘 노를 저어왔던 바로 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도 들지 않을 곳에서 마냥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최희갑 아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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