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아닌 최고를 위해… 공공무용단과 소통의 가교”
예술감독들이 스스로 적폐를 공론화하고, 문제 해결의 기반을 모두 함께 닦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다. 협의회 출범에 앞서 김정학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이 홍승엽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과 임시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들 중 지난 3월 취임해 빡빡한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김정학 예술감독을 만났다. 지난 2003년 상임 안무가로 도립무용단과 인연을 맺은 이후 13년이나 함께 해 온, 그야말로 도립무용단의 ‘산증인’이다.
김 감독은 협의회의 ‘정체와 역할’을 묻는 질문에 예술감독 취임 당시 거듭 강조했던 키워드 ‘소통’을 또 다시 꺼냈다.
“전국의 공공 직업무용단은 공통적인, 그러나 각기 다른 문제들을 갖고 있습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단체 간 상황과 시스템 등을 공유함으로써 좀 더 효율적인 발전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결국 소통이 가장 중요하죠. 임시이지만 일단 ‘가교’가 되기로 했습니다.”
Q 공공 무용단의 예술감독들이 ‘무대’에 스스로 오른 것이 유의미하다. 협의회가 추구하는 활동은 무엇인가.
A 우리나라에는 현재 20개 이상, 25개 가량의 공공 직업무용단이 존재한다. 어느 날, 공공 직업무용단의 예술감독들이 모임을 갖는다며 초청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르스 사태로 하반기 공연이 몰려 있어 뒤늦게 짬을 냈다.
그 자리에서 전국의 일부 공공 직업무용단 예술감독들이 목소리를 냈다. 협의회 구성 취지를 물었더니, ‘무용수(동시에 노동조합 조합원)는 60세 정년을 보장받는 상황에서 예술감독들은 임기 2~3년으로 너무 짧아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공통된 이야기가 나왔다.
협의회는 이 같은 구조적 한계에 공감한 예술감독들이 우리나라 기성 무용수, 후배들,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위해 효율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장으로 보면 될 것 같다.
Q 협의회 초대 대표를 맡게 된 연유는.
A 내년 2월, 늦어지면 3월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그 기간까지 일단 ‘임시’다. 아무래도 나이가 상대적으로 있는 편이어서, 추대한 게 아닐까. 이런 일에 나이는 무의미하다. 역량도 부족하고 나이순으로 할 일은 아니다. 젊더라도 예술감독이라는 직책이 갖는 무게감은 같다. 다만 협의회, 즉 이 모임이 원활하게 이뤄져 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 가교 역할을 맡기로 했을 뿐이다.
Q 협의회의 ‘임시’ 대표로서의 구체적 역할을 설명해달라.
A 공공 직업무용단마다 노동조합이 있는데 일부 예술감독은 ‘노조가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조는 찬성과 반대의 대상이 아니라, 분명히 있어야 하는 조직이다.
단체마다 속해 있는 지자체마다 상황이 다른만큼 노조가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단원들을 그저 노조에 대한 비판적 개념으로 바라보면 안된다. 협의회 임시 공동대표직을 맡게 된 것은 일반적인 노사관계가 아닌 예술단의 특이성과 현실을 서로 공유하고 논의하고 발전적인 방안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단원들과 좀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전에는 스승을 어른으로 모시고 따랐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공식 출범 후 새로운 대표가 뽑힐 텐데, 그 때까지 모임(협의회)의 주춧돌이 되어 소통 방안을 이야기하고 싶다. 앞으로 협의회가 건전한 단체 간 교류를 추진하면서 나아가 문제 해결책을 건의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를 기대한다.
Q 외국 무용단을 비롯한 예술단 대부분의 예술감독 임기가 10년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달리 임기 1년 전 취임을 확정해 단체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리더로서 준비할 시간을 준다. 협의회가 가장 문제삼을 지점일 것 같다.
A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지자체마다 지역 특유의 상황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예술감독의 몫도 크다. 더 큰 문제는 예산이다. 무용(극)이 대중예술과 뮤지컬 등 많은 공연 콘텐츠에 밀려나는 상황이다. 안정적인 예산 지원 없이 대중이 외면하는 무용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 후배들, 제자들이 더 심각한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비교적 많은 예산을 확보했던 시기에는 단체끼리 초청비를 지급하며 서로 공연하고 공유하는 무대가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없는 현실이다. 협의회는 그 무엇보다 무용계에 자라나는 친구들을 위해 선배인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생각할 것이다.
Q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지난 13년 간 도립무용단에서 상임 안무 단원으로 활동한 시간에서 비롯된 것 같다.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후 선보인 창작 무용극 <황녀 덕혜>도 호평받았는데, 돌이켜보면 어떠한가.
A 광복 70주년에 맞춰 기획한 <황녀 덕혜>는 제 몫을 잘 해낸 단원들과 안무가, 그리고 감독의 삼박자가 잘 맞아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 빡빡한 스케줄속에서도 해낸 단원들에게 고맙다. 광복은 항상 돌아오는 것인만큼 언제든 할 수 있는 도립무용단의 레퍼토리로 내년에는 좀 더 다듬어서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Q 새롭게 기획중인 작품 혹은 도립무용단의 활동은.
A 공공 무용단은 단장이나 예술감독 개인이 하고 싶은, 실험적인 작품을 해선 안되는 단체다. 공공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며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것이 도립무용단의 기조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역사적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선보일 것 같다. 공공 무용단인만큼 너무 실험적인 것보다 무용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야기(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춤이 무엇을 말하는 지 쉽게 알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해 전달하고 싶다.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와 위안부 문제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무용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이와 함께 도립무용단의 고정 관객을 위한 상설 공연도 준비중이다. 벌써 내년도 상설 공연 프로그램과 일정을 묻는 마니아가 있다. 변함없이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탄탄한 콘텐츠를 준비하겠다.
Q 2015년 마지막 ‘경기인터뷰’를 장식하게 됐다. 2016년의 소망과 경기일보 독자이자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A 전국에서 최고 무용단이 되길 바란다. 최고가 1등은 아니다. 매 공연, 매 무대, 매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우리 도립무용단의 모든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개인적인 욕심은 없다.
꼭대기에 오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바라보고 올라가는 삶이,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순간이 즐겁다. 10년 이상 도립무용단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 그 순간들을 즐겼다.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2016년 도립무용단도 사랑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류설아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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