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이솝우화 내용이다. 바람과 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람은 외투를 벗기기 위해 강압적이고 위협적이며 직접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해는 사내가 스스로 외투를 벗게끔 만들었다. 바람은 실패했지만 해는 성공했다. 억압적인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옛 사람들의 지혜다.
지난 11월 14일, 서울에서 벌어진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는 시위대의 폭력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이 논란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2차 총궐기 집회신청에 대해 시위가 불법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과 공공질서 유지를 이유로 불허했다. 시위를 둘러싸고 갈등이 점점 심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법원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와 주최 측의 평화시위 약속을 이유로 집회금지 처분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집회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집회를 앞두고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시위는 평화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폴리스라인을 준수했고 경찰도 질서유지에 방점을 두었다. 주장의 선명성을 위해 과격시위를 자행했던 기존의 방식이 아닌, 평화시위로의 진전이었다.
평화시위가 가능했던 것은 주최 측이 끊임없이 평화시위를 할 것을 공언했고, 경찰이 이를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경찰은 물대포나 차벽을 사용하지 않았고, 시위대에선 각목이나 쇠파이프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쇠파이프도 물대포도 없었던 집회에 이전보다 더 늘어난 것은 복면이었다. 이는 최근 발의된 복면금지법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복면금지법은 복면을 쓴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행동할 것을 우려하여 복면착용을 금지한 법안이지만, 이는 지난 2003년 헌법재판소가 집회 참가자는 복장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과 명백히 배치되는 법안이다.
인류는 태초부터 수렵, 어로, 채취로 생활하면서 무리를 지었다. 무리가 커지면서 집단을 형성하자 이전보다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더 크고 힘센 동물들을 사냥하여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사냥하고자 하는 동물들보다 대개는 더 느리고 약했다. 선조들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지혜였다. 얼굴을 갖가지 안료로 덧칠하고 강한 동물의 뿔이나 이빨로 몸을 장식했다.
우리 선조들은 탈을 쓰고 더 강한 것에 도전하고 또 풍자했다. 복면금지법을 발의하여 시위대의 복면을 벗기려는 방식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 무작정 칼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방법과 같다. 나그네가 으스스한 삭풍에 외투를 더욱 더 꽁꽁 여몄듯이, 복면금지법은 더 많은 복면시위대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뜻한 해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지혜를 배워야 한다. 힘없는 민중들이 더 강한 자에 도전하고 풍자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복면은 없어지지 않을까.
전대양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