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출발하자 남자는 자신의 이런저런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한동안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낮추어서 “사실은 말입니다. 스님, 제가…”라고 슬며시 고민을 털어놓는다. 지금 세 집 살림을 하고 있는데 이제 그만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니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다. 누구한테 털어놓고 의논도 못하는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다.
둘 중 한 여인은 마음이 맞고 말이 잘 통해서 친구로 지내다가 서로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당신 없이는 안된다며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이 나도 단단히 났다.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는 법, 이로부터 고통과 근심걱정이 생긴다. 믿고 싶지 않은, 그야말로 참으로 불편한 진실이다.
그래서 남자가 생각해낸 방법은 이렇다. 한 여인은 관계를 정리하고, 좋아하는 여인은 나중에 아내와 시골에 내려가 살면서 가까이에 집을 마련해 주어 서로 왕래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아내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한다.
쭉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조용히 물었다. “가족들을 사랑하십니까?” 남자는 당연히 가족들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아내를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도 했다. 다시 물었다. “과연 아내와 아이들이 이해해줄까요?” 남자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당신에 대한 그 여인의 집착은 날로 더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되고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이쯤에서 어느 쪽이든 서로 상처를 적게 받는 쪽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했다.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들의 달콤함에 빠져 다가올 위험과 재난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겪게 된다. 그러니 앞으로는 욕망을 잘 단속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자는 괴로운 듯 이내 눈을 감았다.
참으로 이 세상의 욕망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롭다. 또 화려하고 달콤하고 매혹적이어서 여러 형태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욕망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면 기뻐한다.
하지만 욕망을 이루지 못하면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온갖 번뇌가 스며들고 위험과 재난이 그를 덮친다. 마치 부서진 배에 물이 새어들듯이 괴로움이 따르게 된다. 때문에 항상 바른 생각을 지키고 모든 욕망들로부터 스스로를 잘 단속해야 한다.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그 순간의 달콤함은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만, 그러나 그 열매는 참으로 쓰디쓰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엇이 근심거리인지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사물의 본질을 확실히 알고 자기의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좁은 생각의 울타리 안에 갇혀서 진리를 등지고 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리라.
잠시 스쳐간 인연이지만 그의 번민과 괴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안쓰러웠다. 이제라도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랄 뿐이다. 그도 행복하고 싶은 한 사람이지 않은가.
며칠째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마치 그 남자의 마음처럼.
도문 스님 수원 아리담 문화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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