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였던 그가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청하자 왕은 허락지 않는다. 그런데 왕은 뜻밖에도 너를 대신할 보증을 세우고 다녀오라고 명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친구 ‘다몬’이 기꺼이 보증을 서서 대신 감옥에 수감되고 피아시스는 고향에 부모님을 뵈러 간다. 그런데 그는 약속된 시간에 오지 않았다.
다몬은 친구 대신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 형장에서 드디어 왕이 수신호만 하면 그는 교수형으로 이슬처럼 사라질 순간이다. 그때 저 멀리에서 말을 타고 오면서 소리를 치는 피아시스를 발견한다. 왕은 “피아시스를 사면하노라” 그리고 독백처럼 “내 모든 것을 내어 주고라도 이런 친구를 사귀고 싶구나”라고 고뇌한다.
내 모든 것을 내어 주고라도 사귀고 싶은 친구. 세상에 진정 그런 친구는 있는 것인가?
그런데 기독교의 성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친구라고 소개한다. 예수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믿는 자의 친구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우리의 친구가 된단 말인가. 그래서 오늘은 예수 내 친구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첫 번째 예수는 조건 없이 나를 선택한 친구다. 지연, 학연, 취미, 나이 등 서로에 조건이 부합될 때 친구의 연을 맺는다. 조건이 사라지면 친구의 연도 사라진다. 그런데 예수는 그렇지 않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라고 말한다.
두 번째 성서의 예수는 비밀이 없는 친구다. 당시의 고대 근동사회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주ㆍ종과의 관계만큼이나 엄격했다.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는 내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다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다. 비밀 없는 소중한 친구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인간이 성숙해 가는 단계를 보면 대개는 비밀이 있어도 지킬 수 없는 아동기가 있다. 그리고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싶은 사춘기 단계, 그래서 그때는 혼자만의 일기장과 비밀의 방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나이 들어가면서 비밀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을 찾는 단계가 된다. 사랑의 대상을 찾고 서로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고 싶은 단계가 있다. 그러나 세상에 참으로 내개 그런 친구가 있는가, 성서는 예수는 비밀이 없는 친구라고 소개한다.
세 번째, 대신 죽어준 친구이다. 예수는 나를 대신에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다. 그러면서 나의 명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고 했다. 예수는 아주 오랜 나의 친구다. 물론 세상에 좋은 친구들이 많다. 오래된 친구도 있고 마음 변하고 떠나간 친구도 있다. 그러나 예수 내 친구는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실망시킨 적도 없다. 마음이 아플 때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오는 친구. 인생의 검은 파도가 일고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도 폭풍우를 뚫고 나를 찾아와 안심하라고 위안을 주는 친구다. 오늘도 삶이 버거운 모는 이들이 예수를 친구 삼아 마음에 평안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반종원 수원침례교회 목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