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구자흥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

“마지막이라 생각… 그동안 경험, 열정·창의로 풀어낼 것”

모두가 뜯어 말리는 결정이었다. 텔레비전 보급이 급속하게 이뤄졌던 1960년대, 방송사 대신 가난한 연극 무대를 선택했다.

공연기획계에서 존경받는 ‘어른’ 구자흥(70)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의 얘기다. 그는 국내 공연기획 1세대로, 지난 3월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로 취임했다.

1970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과 동시에 극단 실험극장에 기획부장으로 입단한 구 대표는 당시 그 무모한 결정 덕에 일흔의 나이에도 “쓸모있는 사람으로 일하고 있지 않냐”며 미소 짓는다. 의정부예술의전당과 안산문화예술의전당관장, 명동예술극장 초대극장장에 연임까지….

지난 40여 년간 성공 사례를 기록하며 무대 뒷길을 쉼없이 달려온 그다. 잔뼈 굵은 구 대표가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껏 쌓은 지식과 경험을 열정과 창의로 풀어내겠다”고 강조한다. “직원과 시민에게 좋은 인연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에 안양문화예술재단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부푼다.

Q 국내 공연기획계에서 존경받는 유명 인사다. 어떻게 공연 분야에 발을 디뎠나.

A 한 편의 연극이 한 사람의 일생을 바꿨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연극을 봤다. 1960년대 연극을 대표하는 <밤으로의 긴 여로> 다. 당시 이해랑 연출에 남산드라마센터에서 공연했다.

재미를 붙여 대학시절 연극 관람이 취미였다. 서울대 연극반 회장도 했다. 그래도 군 제대 후 방송국에 프로듀서로 취업하려 했다. 그런데 한 라디오 피디로 일하던 선배가 ‘나는 연극하려고 방송 그만두는데 네가 방송 들어오면 어떡하냐’고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극계가 더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철이 없었다. 그 말에 ‘연극하다가 방송일 하면되지’라며 극단 입단을 결정했다.

돌이켜보면 남들이 선호하는 방송보다 공연계를 선택한 그 무모한 결정 덕에 지금 이나이에도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어 다행이다. 방송일 했으면 이미 쫓겨났거나 물러났겠지.(웃음)

Q 지금까지 현장을 뛸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A 지금도 어렵지만, 그 당시 정말 충분히 어려운 시절이었다. 광고와 영상 부문 일을 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연극계 종사자에게 현실은 항상 어렵다. 장담할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어렵다. 단군 이래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소득으로만 봤을 때) 이만큼 잘 산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연극계 종사자는 상대적 박탈감에 더 큰 결핍을 느낀다.

그럼에도 모두 술 한 잔 마시며 투덜대고 다시 이 판에서 일한다.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이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 한명도 누가 강요하거나 억지로 시켜서 한 사람이 없다. 스스로 한 선택이기에 행복하다. 그 자부심이 경제적으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준다. (우리는)좋은 책과 영화, 공연 한 편이 한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Q 세월호 비극에 메르스 사태까지, 연극은 물론 공연예술계가 힘겨운 상황이다. 대선배로서 조언한다면.

A 나이 먹은 사람 입장에서 지금이 엄청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문화예술진흥원이 생기고 공공기관과 지자체의 기금과 지원이 있지 않나. 과거에는 전혀 없었다. 이 같은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어느한 연출가에 내년 스케줄을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이 ‘지원 심사 결과를 봐야죠’였다. 치열한 예술혼이 앞서야 하는데, 지원에만 의존하는 상황인 것이다.

창작욕이 앞서지 않는 상태에서 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지원금에 맞춘)안이한 작품 밖에 내놓을 수 없다. 연극이 무엇인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 그 안에서 감동과 웃음 등의 오락적 기능이 존재한다.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야기 하지 않고선 죽을 것 같아서 해야만 한다. 지원 한 푼 받지 못해도,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서라도,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야 말겠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기를 바란다.

Q 지원금에 의존하는 경향은 문제지만 대형 기획사와 제작사 등의 자본력에 순수예술은 더 위축되는 것이 현실이다.

A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나라 연극학과는 70~80개가 된다고 한다. 전 세계에 우리나라처럼 많은 과가 있는 곳이 없다. 중국도 몇 개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숫자다. 그런데 우리의 민족성이 그렇다. <동이전(東夷傳)> 에 ‘신(神)에게 제를 지낸 후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내용도 있다.

일본 연출가들은 이같이 타고난 우리나라 배우들의 끼와 에너지를 부러워한다. 최근 발레나 기악 부문 등에서는 세계 콩쿠르를 휩쓸고 있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극작이 약하다. 일본과 이탈리아에 비해 우리는 노벨 수상작가도 아직 없다. 순수예술의 발전은 바로 여기서부터 고민해야 할 것 같다.

Q 안양문화예술재단의 대표로서 전략은 무엇인가.

A 취임 100일이 지났는데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해 직원과 시민 모두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 하지만 문화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니까,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진단을 해야 처방할 수 있지 않나. 일단 앞서 있었던 서울 명동예술극장과는 큰 차이가 있다.

서울의 공연장들은 명확한 역할이 대중에 알려져 있어 각 공연장(장르별)의 관객층을 넓히는데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지방은 다르다. 시민 모두를 아울러야 한다. 기능과 역할이 명백히 다르다. 문화예술 전 장르를 골고루 보여주면서 다양한 시민의 취향과 욕구를 만족시켜야 한다.

 

Q 구체적인 신규 사업 또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A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노인 문제가 화두인 시대다. 재단에서 노인이 직접 하거나 즐겨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중이다.

지역의 원로 또는 예술가, 기업인 등을 모시고 그 분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마치 학교같은 기능을 추가하고 싶다. 이를 토대로 지역 극장의 특성화를 이루는 것이 목표다.

예로 의정부는 음악극, 안산은 거리극, 가평 재즈축제, 고양은 클래식, 성남은 자체제작 뮤지컬이나 생활예술 등등…. 지역의 극장이 특성화를 이룬 상태다.

안양의 특성화를 위해서는 청소년 관객 양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극장가는 것도 훈련해야 성인이 돼도 간다. 그래서 ‘청소년연극제를 하면 어떨까’ 하는 희망이 있다. 지역예술 진흥 역시 재단의 몫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정이 넉넉한 문화예술은 없다. 다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각종 재단의 공모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원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하겠다.

무엇보다 일은 사람이 한다. 우리 직원들이 안양시민의 영혼을 구한다는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재단의 비전을 공유하며 합의를 이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것이다.

Q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역시 난제다. 일부 시민은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한다. 내년에 열릴 예정인데 앞서 개최 의미와 필요성, 효과 등을 정확히 홍보해야 한다.

A 숙제다. 전문가들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시민은 그 돈을 다른 데 쓰는 것이 낫지 않냐고 묻는다. 설명하기 참 어렵다.

다만 시립미술관 없는 안양시에서 그것을 대신 시내 곳곳에 시각예술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APAP 참여작가 중 한 해외작가를 초대해 전시하고 한 개 작품을 2천만원에 샀다.

몇년 후 그 작가가 지금 서울 플라토 초대작가로 선정돼 작품을 전시중인데, 성공하고 나니 작품값이 7~8배나 뛰었다.

APAP는 안양시가 전국에 내놓을 수 있는 브랜드이고 자산이다. 다만 조금 앞서나간 축제여서 그 개념이 어렵고 홍보를 게을리한 부분도 인정해야 한다. 예술도 일정한 교육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여름에는 썸머나이트투어라는 1시간 30분 가량 APAP로 설치한 작품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내년에는 저명한 작가들을 섭외해 화젯거리를 만들고 한 쪽에서는 신진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마당을 만들 계획이다.

Q 좀 더 친절한 문화재단이 될 것 같다.

A 체홉의 희곡을 보면 전날 저녁에 본 연극을 아침 식탁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러시아에서는 비오는날이면 깨끗한 구두 한 켤레를 더 챙겨 나가 극장에 가면서 갈아신는다고 한다. 그 날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공연장에 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같은 문화의식을 끌어올리는 것이 기획자와 재단의 역할이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문화재단이 생기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중 경기지부가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등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안양시를 포함한 경기도가 다른 곳에 비해 토양이 넉넉하다. 그럼에도 중앙무대에서 활동하려는 예술인과 서울에서 보려는 관객이 많다. 제 일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과오없이 좋은 인연으로 기억될만큼 문화기획자로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열정 창의로 추진하겠다.

대담=이선호 부장

정리=류설아 기자

사진=전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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