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강기훈에게 사과하지 않은 사람들

1991년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만일 그때 대학 1학년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지금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원자주화투쟁에 참여했던 동갑내기 강경대가 백골단 소속 사복경찰에게 쇠파이프로 구타당해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들은 자기 몸을 불사르며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정부 수립’을 외쳤다. 그들 중에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있었다.

그는 서강대학교에서 분신 후 투신자살했다. 이때부터 검찰은 재야민주단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분신 배후혐의를 찾는 내사에 착수했다. 조선일보는 매일 검경발 기사를 내보내며 ‘죽은자의 유서를 대필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추측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냈다.

5월 25일 검찰은 김기설씨의 수첩이 조작되었으며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했다고 발표했다. 김씨의 기존 필적과 유서 필적이 다르다는 것이 근거였다. 강기훈씨가 1985년 경찰에서 썼던 자술서와 유서가 동일한 필적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신문이 “사설 감정기관에 의뢰한 결과 전민련이 제출한 김씨 수첩과 유서가 동일필적으로 나타나 국과수 감정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소용없었다. 강기훈씨는 자살방조와 이적표현물 소지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까지 더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994년 8월 만기 출소했지만 그가 갇힌 감옥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16년 뒤 2007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김씨가 유서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정하고도 5년이 지난 2012년 10월에야 재심이 결정됐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얼마 전 대법에서 최종선고가 날 때까지 그렇게 24년이 흘렀다.

강기훈씨는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 당시 저를 수사한 검사와 검찰 조직은 제가 유서를 쓰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왜곡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의 죄를 만들어낸 이들은 이렇다. 당시 검찰을 총지휘했던 김기춘 법무부 장관,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 수사를 지휘한 부장검사 강신욱 검사는 박근혜 대선캠프 법률특보단장을 지냈고 수사팀의 남기춘 검사는 캠프클린소위원장, 곽상도 검사는 초대 민정수석, 윤석만 검사는 한나라당 지역위원장을 거쳤다.

강기훈씨에게 “피고는 공산주의자 십대신조를 맹신하고 부모를 죽일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라고 법정에서 모욕했던 이들의 24년은 화려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저를 끝으로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책임을 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정권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던 사건의 24년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감옥에 갈 때야 완성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있는 곳은 여전히 감옥이 아니고 권력의 왕좌다.

그러므로 이따위 사회를 유지시켜 주는 것만으로 우리 모두는 강기훈씨에게 사과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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