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기(史記)에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齊)나라의 재상인 맹상군이 본인의 집을 찾은 식객(食客) 중 하나인 풍환의 조언대로, 위기가 왔을 때의 대비책을 마련하여,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토영삼굴(兎營三窟)이란 고사성어가 유래했는데, 토끼가 위난을 피하고자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는 이야기로, 안전을 위해 여러 가지 방책을 짜놓으면 예측하지 못한 위기나 불행이 닥쳤을 때 피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당장은 교묘한 지혜로 위기를 면하려는 것으로만 보일 수 있으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토영삼굴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연초 암울했던 경제 상황을 반추해보면, 지금 세계 경기는 상대적으로 순탄하게 느껴진다. 중국이 두 달 만에 다시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며, 경기부양책을 이어가고 있다. 6개월째 3번째 금리 인하로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유동성 완화가 시진핑 주석의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8월 이후 한국은행이 세 차례 금리를 인하하며 1%대 기준금리를 이어가고 있다. 원래 연초에 실시될 예정이었던 미국의 금리 인상도 하반기로 연기되며 국내외적으로 모두 유동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는 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기업인을 비롯하여 경제계와 대화를 나눌 때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 수익률이 좋은 투자처를 공유하자는 이야기가 예전에 비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유동성이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으니, 개별 투자자나 기업인들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입장이다.
코스피 지수가 3년 8개월 만에 2천100을 넘으며 증권사 객장에는 주식시장 근처에도 가지 않던 일반인들이 계좌를 개설하고자 몰려들었고, 오랜 기간 침체하였던 부동산 시장에도 아파트 거래를 중심으로 모처럼 매매가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지금 증시 상승세나 부동산 거래 활성화는 사상 최초인 1%대 기준금리의 힘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은행 금리 이상의 수익이 보장되는 투자처에 속속들이 돈이 찾아 들어가는 현상이다. 이른바 펀더멘털(fundamental)로 표현되는 경제 기초체력은 변하지 않았고 유동성에 의존한 경기 부양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인천지역 제조업체의 재고지수를 살펴보면 지난 5년간 55% 가까이 상승하지만, 같은 기간 생산지수는 고작 6.6%가 증가하여 실질적인 경제성장과 수요확대가 미진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재고가 쌓여만 가는데 금융시장만 활황을 이어간다면, 그렇게 이어지는 투자 분위기는 거품으로 분석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향후 지금과 같은 금융계의 훈풍은 미국의 금리 인상을 신호탄으로 급격하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올 하반기 7년 만에 단행될 가능성이 큰 미국의 금리 인상은 결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 경험상 미국이 기축통화로 달러의 위상 재정립을 위해 1∼2년 내 연쇄적 금리 인상을 실시하면서 미국의 기준 금리는 단숨에 2∼3%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나라 금융시장으로 들어온 외국자본이 꽤 많이 빠져나갈 확률이 높고, 실제로 1천5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가계부채를 고려하면 지금의 금융 훈풍은 심각한 착시현상이 될 우려가 있다.
더욱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수출에 큰 호재가 없이 민간 소비가 지금처럼 둔화한 상태가 이어진다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큰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
지금도 지역에서 기업인들을 현장에서 만나면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적극적인 투자 전략과 동시에, 예측할 수 없는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명한 토끼가 굴을 세 개나 뚫어놓고 피난처를 준비하는 마당에, 불확실한 대외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는 우리나라, 특히 인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위기 때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전략은 필수다.
물론 뚜렷하게 예정되지 않은 위기를 언급하며 불안감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 다만, 경제분야와 관련해서는 부정적인 예측에 대해 늘 예민하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이 오랜 기간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리하게 엔저 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에는 한두 가지 정책만으로 회복하고 통제할 수 없는 커다란 경제 규모에 기인한다. 우리나라 개별경제 주체들이 토영삼굴(兎營三窟)의 지혜를 교훈 삼아, 미리미리 위기 대응책을 고민하길 기대해 본다.
정병일 인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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