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알묘조장(揠苗助長)과 무용지용(無用之用)

우리나라 아동의 학업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에 학교생활 만족도는 30개국 가운데 평균(26.7%)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18.5%의 아주 낮은 수준(26위)이라고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우리나라 아동 종합실태와 유니세프(UNICEF)의 자료를 비교 분석해 보도하고 있다.

아동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 정치권이나 교육계는 지난해에 몇 가지 교육관련 입법을 추진했다. 지난해 3월 제정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나 12월 제정된 ‘인성교육 진흥법’ 등은 전체적으로 학교교육 정상화나 교육의 본질 회복을 바라는 정치인들의 대표적인 입법 활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아동의 행복한 학교생활과 인성교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치권의 법률 제정이나 개정과 함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시민과 기성세대의 인간과 교육에 대한 의식 전환이다.

우리 사회의 아동 성장과 발달 및 교육에 관한 일반 의식은 ‘알묘조장(揠苗助長)’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맹자(孟子)는 전국(戰國)시대 송(宋) 나라 농부의 행동을 예로 들면서 사람을 키우는 교육에 대해 인간의 성급함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벼농사를 잘 지어보려는 농부가 모(苗)를 심은 후 며칠 동안 매일 논에 나가 보니, 자기가 심은 모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없게 되자, 하루 종일 자기가 심은 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조금씩 뿌리를 뽑아 올려놓고서는 집으로 돌아와 자기 아들에게 ‘모가 잘 자라도록 했다’고 자랑했다. 이에 아들이 놀라서 논에 나가 보니, 이미 모들이 모두 말라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맹자는 이 우화를 통해 어떤 일을 하면서 반드시 성과가 금방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조급함이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의 본성을 일그러지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교육은 인간의 유용한 재능을 키우는데(有用之用)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금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다양한 힘을 미래에 쓸모 있도록 도와주고 키워주는 일(無用之用)도 포함한다. 만약 우리 교육이 유용한 것의 쓰임새에만 집착한다면 우리 교육은 재목(材木)을 키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목(巨木)을 자라게 할 수가 없다.

우리네 명산(名山)과 고향 동네 곳곳에 그곳의 역사를 말없이 전해주며 우뚝 서있는 거목을 보라. 하나같이 비틀어져 있고, 줄기에는 구멍이 난 채 서있는 나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쓸모없는 나무(散木)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 재목이 되지 못하는 나무, 재목이 되었다면 이미 오랜 옛날에 누군가에 의해 베어져서 어느 집 기둥이나, 그릇이 되어서 유용하게 쓰이고 사라져 버렸을 텐데 쓸모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도끼질을 피하였고, 그럼으로써 나무의 본성을 잘 지켜 산과 동네를 지키게 된 나무, 누가 이 나무의 쓰임새를 알기나 했을까?

거목이 되었을 때, 이 나무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둥지가 되고, 무더운 여름이면 아이들과 동물들의 휴식처가 되고, 추운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막아준다.

그 무용(無用)함 때문에 인간의 지나친 간섭과 성급함, 당장에 쓰여야 하는 현실의 효용성에 대한 부담을 슬기롭게 이겨내었고, 하늘과 땅을 스승으로, 자연을 벗으로 하여 오히려 무용(無用)으로서 큰 유용함을 베푸는 거목을 키우듯 우리 사회는 그렇게 사람을 가르칠 수 없을까?

고대혁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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