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가족의 힘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위험과 재난에 직면한다.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이 위험과 재난에 희생당하기도 한다.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누가 더 생존할 가능성이 높을까?

“1973년 8월 어느 날,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맨섬(Isle of Man)의 유명한 휴양지 서머랜드에서 가족 단위로 휴가를 온 사람들, 지인이나 친구와 함께 휴가를 온 사람들 등 약 3천여 명의 휴가객들이 야외 정원이나 수영장 등에서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오후 7시 40분쯤 호텔 내의 한 매점이 불길에 휩싸였고, 소방대가 도착한 8시 20분경에는 거대한 불길이 이미 호텔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자 가족 단위의 휴가객들은 서로를 잃지 않고 함께 탈출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가족들은 혼란의 와중에서도 필사적으로 서로를 찾았고, 심지어 고립된 가족을 찾기 위해 출구의 반대편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화재 당시 대형 야외정원에 있었던 가족 중 절반이 자신의 가족을 찾아 헤맸고, 실제로 가족을 찾았으며 전원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지인이나 친구의 경우는 달랐다. 화재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족보다 더 중요한 관계라고 여겼던 친구들마저도 화재가 발생하자 19팀 중 탈출하기 전 서로를 찾아 헤맨 경우는 단 한 팀도 없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살아남은 가족들은 비록 충격은 받았지만 자신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격해하였다. 51명이 사망하고 400여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던 서머랜드 화재 사고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타워링(The Towerring Inferno)’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어떤 심리학자는 가족 안에는 태초부터 내려오는 신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상황에서 가족이 발휘하는 힘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혼자일 때보다 가족의 일원으로써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으며, 좌절과 공포 상황에서도 그것을 견딜 수 있게 해주며, 구성원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경구(警句)나 “기쁨을 같이 하면 그 기쁨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함께하면 그 슬픔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가장 잘 통하는 공동체가 가족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가족 관련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 신뢰의 공동체, 안전지대로서 가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찰 통계에 따른다면 지난 7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가족 살해 사건은 611건으로 전체 살인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약 7% 정도가 된다. 이는 세계 법의학계에 통계가 보고된 국가 가운데 프랑스 2.8%, 미국 2%, 영국 1.5%에 비해 가장 높은 비율이며, 존속 살인을 제외하고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경우 역시 230건으로 가장 높다.

가족 살해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패자 부활의 기회가 박탈되고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불안 사회, 피로사회에서 만약 우리의 가정이 심각한 상대적 빈곤감이나 심리적 위기 상황에 처할 때, 가족 구성원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삶에 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자신의 의사에 관계없이 그 희생양이 되기가 쉽다.

사회 발전과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가족이나 가정의 형태도 다양화되고, 이에 따른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강화된다 하더라도 가족 관련 문제는 국가의 복지 정책이 대신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어떤 재난과 곤경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득한 ‘가족의 힘’을 회복할 수 있는 시민 교육과 사회적 각성이 다시 한 번 필요한 시점이다.

고대혁 경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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