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회 주변에 ‘연말이 있는 삶’이 생겼다고 한다. 여야가 지난 2일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합의처리하며, 헌법에 명시된 기한을 지켰기 때문이다. 이로써 해를 넘겨가며 예산안을 처리하던 비정상적인 관행의 고리가 끊어졌다.
국회 선진화법 덕분이다. 물론 여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법안에 대해 야당이 타협해주지 않으면 국회통과가 어려워져 여당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원칙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 우리 정치처럼 소수에 대한 배려 없이 다수결 원칙만 관철되면 극단적으로 51%를 위한 민주주의만 실현되고, 나머지 49% 국민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될 수밖에 없다.
승자가 모든 전리품을 독차지하고 패자는 철저히 소외되는 정치풍토 아래에서는 선거 승리를 위해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가 불가피하게 된다.
선진 민주국가들이 상설의회를 두고 있는 것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소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여 적어도 70~80%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법안과 예산안을 협의 통과시켜 시행하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다수당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을 통해 국회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18대 이전의 우리 국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대립과 갈등을 녹여내는 정치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민생현안이 아무리 시급해도 야당의 장외투쟁으로 해마다 몇 달씩 국회 문이 닫히기 일쑤였다. 욕설과 주먹질이 난무하는 이전투구 정치가 일상화되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국회 선진화법은 이런 ‘싸움질만 하는 정치’에 대한 참회의 결과물이다. 선진 의회에서 수백 년 동안 관행으로 정착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제도화한 것이다.
당시 필자는 민주당 원내대표로서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함께 국회 선진화법 입법을 주도했다.
지금 경기도에서는 연정이라는 초유의 정치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국회 선진화법과 경기 연정의 정신은 일맥상통한다. 승자독식의 정치문화를 청산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그 수혜자가 국민이나 경기도민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회처럼 예산안 처리 시한이 지켜졌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지난주 성탄전야에 통과된 경기도 예산안을 보면 그런 고민이 녹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야당의 양보로 남경필 지사의 따복마을, 빅파이 예산이 반영되고, 여당의 양보로 경기도정 사상 처음으로 학교교육급식이란 예산항목이 신설되었다. 생활임금, 공공산후조리원 등 당초 항목에 없던 ‘연정 예산’이 들어간 것도 분명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이다. 연정이 의회 고유의 집행부 견제와 감시 기능을 무력화하는 기제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비판할 것은 철저히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되, 협력할 것은 과감하게 협력하는 황금룰을 잘 찾아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의회에 주어진 무거운 과제일 것이다.
국회 선진화법의 요체는 높아진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에 맞춰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는 경기 연정에도 똑같이 던져진 질문이다. 경기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 막 닻을 올린 경기 연정의 성공적 항해를 바라마지 않는다.
김진표 前 민주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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