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엄마의 자격

덜컥 엄마가 되었었다. 다른 생명이 내 몸에 둥지를 틀다니… 오 마이 갓! 며칠 전에는 만취상태로 노래방 탁자 위에 올라가 가무까지 즐겼다. 의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술을 아주 많이 먹었는데, 괜찮을까요?” 의사는 “결혼 안하셨습니까?”라는 동문서답으로 예비 엄마 심사를 상하게 만들었다. ‘결혼한 여자는 임신을 예비하면서 몸조심하고 살았어야지’ 하는 책망이 들어있는 말이었으리라. 어쨌든 그렇게 얼렁뚱땅 자격증도 없이 부모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14년 전 일이다.

음주와 스트레스, 과도한 업무 와중에 뛰어들 만큼 왕성한 DNA를 가진 아이는 다행히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아이가 생기고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툭하면 코를 팽팽 풀어야할 정도로 눈물이 많아졌다. 어린 생명과 관련된 일이면 놀라운 투지가 샘솟았다. 가까운 어린이의 일이건, 먼 나라 어린이 일이건 가리지 않았다. 이라크, 레바논,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음을 몸으로 먼저 깨달았다.

이전에는 제국주의자들과 군수산업체 음모라고 분노했던 일들이 구체적 얼굴로 등장했다. 그들의 고통과 내 옆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고통이 하나로 연결된 핏줄처럼 아팠다. 일 년 넘도록 매주 반전평화 캠페인을 지켰던 이유는 고통 때문이었다.

엄마가 되면 가장 어려운 일이 아이 때를 밀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목욕탕에 가는 게 가장 주눅 드는 일중에 하나였다. 며칠 전 아이 다리에서 때를 발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싫다는 아이를 붙잡고 한참 때를 밀었다.

저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그래도 다 밀었다. 씩씩거리며 땀 식히려고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데, 삼십년 전 쯤 세 아이 때를 밀던 엄마 마음이 생각났다. 엄마는 쉬웠을까. 엄마는 엄마가 되는 것이 무섭지 않았을까. 엄마한테 우리는, 나는 정말 예쁘기만 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러한 엄마들의 공포와 땀에 기대서 자랐는지 모른다.

엄마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엄마는 엄마라고 맡겨진 어떤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투쟁의 증거일지 모른다. 섣불리 엄마는 위대하다고, 그래서 그 이후 나는 말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가 된 이후, 완전하지 못한 어느 여자의 두려움을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그게 아이가 가르쳐 준 가장 큰 것이었다.

요즘 세월호 유가족이라 불리게 된 엄마들과 자주 만나고 있다.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지 못해서 죄책감으로 사는 엄마들이다. 그래서 죽음의 진상만은 밝혀주겠다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복잡하지 않다. 누구라도 할 일을 그들은 하고 있다. 엄마이기 때문에 나는 알겠다. 6개월이 아니라 6년, 60년이 지나도 내 자식 죽은 이유를,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일을 나라도 하겠다. 부끄러움 하나 없고 대단하고, 훌륭한 엄마라서가 아니다. 사랑했던 만큼 상처가 크고 다 사랑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빈자리가 클 것이다.

그 마음 하나 헤아려 주지 못하는 한국사회는 얼마나 야만적인가. 세월호가 ‘정치 쟁점’이 되어 온갖 말들이 난무하는 오늘, 나는 엄마의 자격으로 그들을 무한히 지지한다. 엄마라서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