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부총리의 말장난 또는 거짓말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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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 대학교 경제학 박사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엘리트 경제 관료였다. 국회 조세소위 위원장도 했다.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경제부총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경환 부총리를 학문과 실무, 정치를 겸비한 경제 1인자라 부른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증세 계획은 없다…이번 담뱃값 인상은 세수가 아니라 국민건강이 목적이다…(주민세 자동차세 인상도)지자체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중앙정부가 마지못해 받아들인 정책이다.”

혹세무민이 따로 없다. 여론을 어지럽히고 국민을 속이는 말이다. 담뱃값이 한꺼번에 80% 올랐다. 하루 한 값이면 1년에 121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9억원짜리 주택의 재산세와 맞먹는다. 끽연자에겐 유례 없는 세금 폭등이다. 주민세도 평균 4천600원 선에서 두 배 오른다. ‘주민세 인상’이라는 단어가 22년만에 처음 등장했다. 자동차세도 2017년까지 두 배 오른다. 존재감 없던 자가용이 애물단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증세 아니고 뭔가. 그의 현학적 표현이야 어떻든 서민에게 날아올 건 세금폭탄 고지서다.

지방정부를 핑계 댔는데 이것도 그렇다. 지방정부의 예산 타령은 연례행사다. 지자제 이후 20년 내내 그랬다. 그런데 이번만 유독 지자체 요구에 반응했다. 내년부터 5천억 원(지방세수 인상분 4천억원+담뱃세 포함 지방세 인상분 1천억원)이 지방에 돌아갈 것이라며 선심 쓰듯 설명했다. 그 뻔한 이유를 모르는 지방민은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떠넘긴 복지비용 6조원 때문이다. 이를 놓고 ‘지방을 위해서 줬다’고 설명하면 안 된다. 게다가 보충이랄 것도 없는 돈이다. 지방의 계산은 여전히 ‘-5조5천억원’이다.

지난주, 지방 정부의 복지 무책임을 지적했다-본보 9월11일자 ‘김종구 칼럼’-. 기초연금 때문에 파탄 나게 생겼다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을 향한 지적이었다. 무상급식으로 무상복지의 불을 지핀 건 본인들이면서…. 그 무상급식의 달콤한 열매로 시장ㆍ군수 됐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상급식에는 수십 수백억원씩 널름널름 퍼주면서…. 기초연금만을 탓하며 난리 법석을 떠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아서였다. 스스로 무상급식을 수정하는 자세가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그때와 똑같은 핑계가 이번엔 중앙정부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은 복지폭탄 돌리기다. 중앙은 지방에 복지비 충당 책임을 돌리고, 지방은 중앙에 예산 파탄 책임을 돌리고 있다. 중앙은 지방에 세금 인상 원인을 돌리고, 지방은 중앙에 편법 증세 원인을 돌리고 있다. 기초연금이 중심인 중앙 정부 복지와 무상급식이 중심인 지방 정부 복지가 충돌하는 폭탄 돌리기다. 실망스럽게도 그 한 축에 대한민국 ‘경제 대통령’-경제 관료였고, 경제학 박사이고, 경제통 정치인이기도 한- 최경환 부총리가 있다. 비전문가들 틈에 섞여 그도 그들처럼 핑계 대고 그들처럼 거짓말하고 있다.

몇 해 전, 우리가 본 모습에 이런 게 있다. 미국발 ‘복지-증세’ 충돌이다. ‘셧 다운’까지 몰고 갔던 ‘오바마케어’(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가 천문학적인 예산으로 위기에 부딪혔다. 오바마의 승부수는 증세였다. 부자들에게 ‘버핏세’를 물렸다. 이 세목으로 4천억달러(우리돈 1,700조 원)을 만들었다.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의 부부에게 적용했던 감세 혜택도 폐지했다. 여기서도 8천억 달러를 챙겼다. 그런 오바마에게 미국민은 재선(再選)을 선물했다. 당당한 복지와 떳떳한 증세에 대한 화답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복지를 위한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실토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방세 인상도 중앙정부 때문이다’라고 시인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또 다른 세금 인상도 있을 수 있다’고 털어놓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표가 떨어지더라도 악역은 내가 맡겠다’고 선언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어차피 복지는 뒤로 갈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 폭발 직전에 온 복지 폭탄을 끌어안아야 한다. 혹시 ‘2017 대망(大望)’을 꿈꾸는 지도자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런데 안보인다. 최 부총리도 아닌듯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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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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