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그러면 노인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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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ㆍ기초연금의 이중 잣대-

4년 전 이 맘 때는 모라토리엄이었다. 돈 없어 빚을 못 갚겠다는 선언이었다. 성남에서 시작된 화두가 전국을 휩쓸었다. 분노한 여론은 전임 지방 정부를 겨냥했다. 8년 한나라당 지방 정부가 대상이었다. 호화 청사부터 대형 운동장까지 모든 게 심판대에 올랐다. 5기 시장들은 거덜난 집안을 살리는 해결사가 돼야 했다. 부채 정리와 재정 건전성 확보에 모든 걸 걸었다. 그 결과 많은 시군의 곳간 사정이 개선됐다.

4년 흐른 지금은 디폴트(default)다. 돈 없어 부도나게 생겼다는 취지는 같다. 이번엔 특정 지자체만의 선창(先唱)도 아니다.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이 함께한 합창(合唱)이다. 226개 지자체장이 서명한 ‘디폴트 성명서’가 프레스 센터에서 발표됐다. 달라진 건 그 원인이다. 정부가 떠넘긴 복지 비용이 원흉으로 지목됐다. 전체 예산의 35%를 오르내리는 복지비 부담이 지자체를 파산으로 몰고 있다는 설명이다.

원인이 다르면 치유 방법도 달라진다. 4년 전 모라토리엄은 개인의 문제였다.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간 전임(前任)들의 책임이 컸다. 어떤 전임자는 ‘먼지까지 털려’ 감옥에 갔다. 어떤 전임자는 회생 불능의 ‘파산자’로 찍혔다. 해결해 낸 것도 신임(新任) 시장들 개인이었다. 성남 시장은 모라토리엄을 졸업시켰다. 수원시장은 부채 3천억원을 300억원으로 줄였다. 모라토리엄은 그렇게 망친 것도 개인, 살린 것도 개인이었다.

지금의 디폴트는 복잡하다. 중앙ㆍ지방간의 갈등이 원인이다. 그 밑에 난공불락의 당리ㆍ당략까지 깔려 있다. 3일자 성명서에 등장한 ‘중앙 정부의 복지부담 전가’가 그것이다. 기초연금 인상은 새누리당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서명한 외상 장부다. 시장ㆍ군수ㆍ구청장 중 누구도 그 장부에 연서(連署)한 적 없다. 그런데 몇백 억 원짜리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대통령 공약 뒤치다꺼리하다가 4년 다 갈 판이다. 당연히 억울해할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4년 전으로 돌아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초연금의 기원에는 ‘무상(無償)’ 바이러스가 있다. 보편적 복지라는 탈을 쓰고 등장한 ‘무상급식’이었다. 걸인(乞人)의 아들도, 갑부(甲富)의 손자도 구분하지 않는 공짜 복지였다. 이 공짜 바이러스가 유권자의 눈을 가렸고, 그 틈새로 당선된 게 민선 5기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재선(再選)으로 몸값을 높였다. 디폴트 성명서를 낭독한 것도 그들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이게 딱 그 격이다. 민선 5기는 무상급식의 폭주(暴走) 4년이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4, 5학년으로 시작했다. 다음해는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됐다. 그다음 해는 중학교로 확대됐다. 대안학교에 유치원까지로 넓혀졌다. 그 사이 십몇 억 원에서 시작한 예산이 100~200억원까지 치솟았다. 지금 그들이 망하게 생겼다며 아우성치는 복지비 ‘35%’에 그 돈이 섞여 있다.

더 답답한 건 이런 공짜 바이러스가 여전히 살아 꿈틀댄다는 거다. 성남시는 ‘65세 이상 버스비 지원’을 선언해 중앙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기초연금 20만원 중 지자체 몫 8만원을 먼저 뿌리겠다고도 약속했다. 7ㆍ30 재보선의 수원 지역 후보는 무상급식을 고교생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중ㆍ고교생 무상 교복까지 들고 나왔다. ‘복지 부담 때문에 큰 일 났다’며 성명서 내는 지자체의 뒷모습이다. 시민 누가 동의하겠나.

이러면 안 된다. 스스로의 반성과 개선이 먼저다. 무상급식 퍼주기부터 반성해야 한다. 무상급식 3조원 개선책부터 고민해야 한다. 혹시 무상급식 확대를 약속했다면 설명하고 백지화해야 한다. 혹시 과도한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면 사과하고 축소해야 한다. 그런 반성이 있을 때 비로소 기초연금을 탓할 자격이 생긴다. 그때 비로소 기초연금 5조원을 거부할 명분이 생긴다. 그게 정상적인 행정의 책임과 균형이다.

4년 전, 이렇게 썼다. ‘무상급식이 재정을 위기로 내몰 것이다’. 그때 ‘그들’이 말했다. ‘그러면 아이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4년 뒤, 이번엔 ‘그들’이 말하고 있다. ‘기초연금이 지방 정부를 파탄 낼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말하려고 한다. ‘세금에 애들 돈 따로 있고, 노인 돈 따로 있나. 애들은 먹이고 노인들은 굶기자는 것인가?’. 억지 논리라며 분해할 것 없다. 언젠가 닥칠 공짜 복지의 업보(業報)였다. 다만, 그 끝이 빨리 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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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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