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정치인의 忠은 국민을 향해야 한다

한가위를 일주일 앞둔 오늘은 정기국회 개회일이다. 당장 세월호특별법 제정은 물론 법안 처리, 대정부 질문, 국정감사, 내년도 예산안 심의 등 일정이 줄줄이 놓여 있다.

특히 이번 정기국회부터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법정일 내에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12월2일까지 예산안을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하도록 한 국회선진화법이 사실상 처음으로 적용된다.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권은 지난 4월 우리 아이들의 꽃다운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로부터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참사 직후 “단 한명의 추가 생존자도 구하지 못한 나라의 무능을 더 이상 반복해선 안된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의 달라져야 한다”던 온 국민의 다짐은 공허한 구호에만 머물러 있다.

참으로 기이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갈등 해소와 국민통합을 이끌어내야 할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었다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갈등이 장기화하고, 정치권이 슬그머니 사회적 피로감을 부추기면서 흐지부지하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특히 국가운영을 책임지는 정부와 여당의 전향적인 태도 전환이 아쉽다. 당장 대통령부터 세월호 참사 직후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제3자처럼 방관하고 있는 불통의 리더십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당도 지지 세력의 눈치나 살피면서 정파적 이해만 따질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자세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잃은 유족들을 생떼나 쓰는 사회적 갈등 유발자로 몰아붙이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야당의 책임은 전혀 없는 걸까? 제1야당의 원내대표와 경기도지사 후보를 지낸 사람으로서 ‘제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는 격‘이 될까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야당의 책임 또한 정부 여당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야당이라면 국가경영 대안세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낡은 투쟁방식으로는 결코 감동을 줄 수 없다. “정치인은 국민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야 한다”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올 여름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 ‘명량’이 1천6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도 “상유십이(尙有十二),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며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자세로 싸웠다. 전투에 앞서 울돌목의 지형과 바닷물의 흐름을 파악하고 어떻게 싸움에 임할지를 고민했기 때문에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었다.

백성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 정치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이순신 장군의 불호령이 들리는 듯하다. 무책임한 정부 여당과 무능한 야당이 서로 “네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기기 이전에 지금이라도 “우리의 충(忠)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자문해볼 일이다.

김진표 前 민주당 원내대표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