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범 옥살이한 ‘인천감리서’ 터 방치한 無知

인천시와 중구청의 역사 유적에 대한 몰이해가 한심스럽다. 100여 년 전 일제 강점기 일제에 항거한 백범 김구 선생이 두 차례 옥살이 한 인천감리서(仁川監理署·인천시 중구 내동 83)터가 관리 소홀로 잡초만 무성한 채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인천감리서는 조선조 제26대 고종 재위 개항시대의 사법기관이다.

백범은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응징으로 21세 때인 1896년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인 밀정 육군 중위를 처단,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감리서에서 옥살이를 했다. 백범은 그의 일지에서 “인천은 내 일생에 있어 뜻 깊은 곳이다. 21세에 사형선고를 받아 옥살이 중 2년8개월 만에 탈옥했고, 39세에 다시 이 감옥에 이수되었다”고 인천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백범은 청년시절 옥중 독서로 개화사상을 배움으로써 그가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계기의 첫 장소가 됐다. 백범이 자신의 일지에서 인천과의 인연을 강조했듯이 그가 옥살이 한 인천감리서는 그만큼 그의 항일정신과 독립 혼이 서린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장소다. 뿐만 아니라 인천감리서 터 뒤편엔 김구 선생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자식 옥바라지로 애틋한 모정이 깃든 집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역사적 의미가 큰 장소가 당국의 사적(史蹟)에 대한 몰이해로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인천시가 한 일이라곤 고작 1984년 이곳에 인천감리서 터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운 게 전부다. 그 후 2010년 중구청이 표지석을 눈에 잘 띠는 아파트 화단 쪽으로 옮겨 펜스를 설치하고 안내판을 추가로 설치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아파트 상가 공사가 진행되면서 건축 쓰레기까지 나 뒹굴어 더 황량해졌다.

중구청 관계자는 “이 유적지가 문화재 가치는 있지만 지정문화재도 아니고 사유지여서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궁색한 변명이다. 중구청이 인천시 지정문화재로 지정되도록 노력이나 하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항일정신이 서린 사적 보존에 인색한 중구청이 수십억원을 들여가며 일본 조계지(租界地)를 일제 거리로 재현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인천시와 중구청은 전남 보성군이 백범이 인천서 탈옥한 후 은거한 곳을 기념관으로 꾸며 그의 정신을 기리는 걸 본받아야 한다. 역사 유적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인천시 등은 인천감리서 터를 최대한 확보하고, 백범 어머니가 옥바라지 한 집을 매입, 역사관 등을 만들어 교육의 장과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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