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5월 23일 인천AG 참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이달 7일에는 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전격 발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6월12일에는 인천AG에 참가할 14개 종목, 150명 규모의 인원엔트리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 소식은 그동안 북한의 대회참가와 함께 백두산 성화채화, 일부종목 단일팀 구성, 남북 동시입장 및 공동응원 등을 성사시키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던 인천시 입장에선 ‘낭보 중 낭보’가 아닐 수 없다.
양측 관계회복 돌파구 기대
사실 인천시는 남북관계가 상당기간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도 북한의 AG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눈물겹도록 고군분투해왔다. 이는 인천시가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천 평화컵 국제유소년(U-15) 축구대회, 성인남자축구팀(인천유나이티드-4·25축구단) 친선경기 등 남북체육교류를 끈질기게 추진해온 데서 잘 드러난다.
다행스럽게도 북한의 인천AG 참가 결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남북관계 회복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300만 인천시민의 기대는 남다른 것 같다. 한반도의 화약고가 돼 버린 서해5도가 위치해 있고 전체인구의 15~20%가 이북5도민 출신인 인천시의 지정학적·인구학적 특성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체육교류분야는 그동안 남북 간 긴장완화와 관계개선에 큰 도움이 돼 왔다. 일찍이 경평축구대회가 있었다. 1929년 ‘전경성군 대 전평양군 축구대항전’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이 대회는 대단한 인기가 있었다.
1990년에는 경평축구가 남북통일축구대회로 이름을 바꿔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열렸다.
이를 시작으로 남북체육교류는 1991년 제41회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 1999년 남북노동자축구대회, 1999년 남북통일농구대회, 2002년 남북태권도 시범단 교환경기, 2003년 민족통일평화체육축전, 2005년 남북통일 815축구경기, 2007년 남북유소년축구팀 상호교환경기, 2008년 남북태권도교류행사로 이어졌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시작해 전 세계인에게 뜨거운 감동을 줬던 남북공동입장은 이후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2006년 도하AG, 2007년 창춘동계AG까지 이어졌다. 2002년 부산AG과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2005년 제16회 인천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는 북한응원단이 참가해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9년 이후 남북체육교류는 사실상 단절돼 왔다.
스포츠는 국경, 종교, 이념, 정치를 초월한다고 했다. 이제 앞으로 체육교류만큼은 정치·군사적 상황과는 별개로 그 어떤 조건에서도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특히 북한의 인천AG 참가를 계기로 남북스포츠교류가 정례화 되기를 희망한다. 이와 함께 조속한 시일 내에 남북체육교류의 내용과 형식을 다각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 활짝 열리기를 학수고대한다.
정치적 상황 초월한 축제의 장으로
한편 우리 인천시가 남북체육교류의 중심이자 남북화해의 전진기지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인천시가 그동안 각별한 관심을 보여 온 남북 간 축구교류의 성과를 계승해서 한동안 중단돼온 경평축구를 ‘인천-평양축구(인평축구)’로 부활시킬 것을 제안한다. 또 인천시체육회가 운영하고 있는 인천시청 및 체육회 운동경기부 선수(팀)과 북한선수(팀) 간 합동전지훈련과 정기교류전을 실시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벌써부터 필자의 귓가에는 인천하늘에 울려 퍼질 남북응원단의 벅찬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남북이 어깨동무로 하나 되어 부르는 아리랑 노래에 목이 절로 메어온다.
김도현 인천시체육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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