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필드하키 국가대표→대기업 임원 ‘성공신화 3막’
사실 이 세가지 명칭의 연관관계는 상당히 없어 보인다. 상식적으로 접근한다면 3명의 각기 다른 인물의 삶을 단순히 나열한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 세가지의 삶을 모두 소화하면서 성공스토리를 써가고 있는 맹렬 여성이 있다. 바로 동아오츠카(주) 이진숙(45) 커뮤니케이션 실장(이사)의 이야기다.
‘체육교사’를 꿈꾸며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훈련하던 그녀에게 닥쳐온 인대파열의 부상은 크나큰 좌절과 실의를 안겼고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게 된다. 하지만 운동선수로서 그녀의 몸속에 흐르는 ‘독기’는 더욱 자신을 강하게 단련시켰다.
업계에서의 여성에 대한 편견도 그녀의 부단한 노력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시각에 불과했다. 여느 남자보다도 ‘의리’를 강조하는 이 실장에게 숨겨왔던 그녀의 삶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Q. 여성 체육인으로는 드물게 대기업 임원이 됐다. 현재의 자리까지 오른 나름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제품에 대한 ‘자부심’과 나의 일에 대한 ‘열정’이다. 입사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건강을 생각한 정직한 제품과 이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정성이 때론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원동력이다.
Q. 색다른 이력을 지니고 있다. 필드하키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는데 하키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대학 입학이 늦어진 이유, 당시 활동 상황을 설명해달라.
A. 운동을 하신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체육에 재능이 있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각 종목의 실기시험에서 줄곧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는데, 중학교 3학년 때 교내 필드하키팀 창단멤버를 발탁 중이던 담당 체육선생님의 추천이 있었다.
당시에는 왜소한 몸집 때문에 시작했던 운동이 고등학교 진학 후 차츰 프로로서의 욕심이 생겨 대학입시를 준비했지만, 뒤늦게 시작한 운동인 만큼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입시의 쓴 맛을 보고 재수를 선택하게 됐다. 이듬해에는 꼭 합격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사실 그때의 1년이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지는 몰랐다. 이전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Q. 학창시설 미인 대회에 출전해 입상했다. 미인 대회 출전은 자신의 의지였나, 아니면 흔히 얘기하는 ‘미용실 원장님’ 권유에 의한 우연한 기회였나.
A. 말하자면 흔히 얘기하는 ‘미용실 원장님 권유’다. 당시 필드하키를 하면서 재수를 하던 시기여서 항상 숏커트를 유지했는데, 어느날 평소처럼 자주 가던 미용실에 들려 손질을 받았다. 머리를 손질해주던 원장님이 갑자기 ‘보름 뒤에 인천시 미인선발대회가 열리는데 참가해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왔다. 총 5명 중 마지막 멤버를 물색 중이었던 터였다.
터무니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2주간의 짧은 준비를 거쳐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마지막 참가자로 무대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승부욕을 발휘, 운동선수의 건강미를 앞세워 최후의 2인까지 살아 남아 ‘미스 인천 선(善)’에 당선돼 본선대회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탤런트 상을 받았다.
Q. 운동 선수 출신이 식음료 업계에 입사한 배경이 궁금하다. 또 간접광고(PPL)가 지금은 대세지만 1990년대 PPL이 낯선 상황에서 영화 ‘쉬리’의 아이디어를 내 흥행을 성공시켰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A. 대학 졸업 후 교사발령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학교 선배에게서 동아오츠카에 들어와 마케팅 실무를 배워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두달 가량 경험 삼아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시작한 일이다. 이후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포카리스웨트’라는 브랜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마케팅 활동이 있는지, 소비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입사 후 두 달 만에 일본 오츠카제약 연수기회가 주어졌는데, 능력개발연구소에서 보여준 오츠카제약의 역사, 기업이념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공장부지를 본 순간 ‘내가 가야 할 길이구나’라고 느꼈다. ‘건강을 위한 제품의 진정성’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이 회사라면 내가 열정을 다해 몸 바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PPL은 새로운 영역이었기 때문에 용기는 필요했지만 부담은 적었다. 좀 더 확실한 홍보를 고민했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이 곧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직접광고가 아닌 이야기 속 또는 장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소비자들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인식시키고 싶었다.
그 첫 번째 도전이 영화 ’쉬리’ 였다. 자판기가 총격전으로 망가지는 신이어서 윗분들이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만류했지만 신념을 가지고 설득했고, 결국 흥행이 성공되면서 제품 홍보 또한 대박을 터뜨렸다.
A. 마케팅은 회사의 거울이다. 기업에 들어와 여러 가지 업무를 맡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재다능한 인재로 성장하는 것도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성장하면서 맥락을 함께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일 또한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20년이라는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차곡차곡 쌓인 노하우가 나의 자산이다.
Q. 식음료 업계가 상당히 보수적인 분야라고들 한다. 업계에 여성임원이 탄생한 경우도 드물다. 특히, 그룹 전체에서 첫 여성임원이 돼 자부심도 크고 그만큼 부담도 뒤따를텐데.
A. 부담이 된다. 하지만 이 부담 또한 나에게 행복이다. 식음료 업계는 유독 보수적이라 내부승진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그럼에도 나를 믿어주고 이끌어주는 조직에 감사하고, 한번 뿐인 인생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기업을 승리로 이끄는 힘의 25%는 실력이고, 나머지 75%는 팀워크’라는 말이 있다. 나를 지켜주는 팀원들과 후배들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Q. 가정 주부로서 가정과 회사일 두 가지를 하면서 힘든 과정이 많았을텐데, 어떤 때 가장 힘들고 가족에게 미안한 점은 무엇인가.
A. ‘가족’은 내가 직업여성으로서 활동함에 있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마음 아픈 약점이다. 내 일, 내 꿈에 대한 열정이 넘치다 보니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때마다 용기를 주고,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남편이 우연한 기회에 회사 대표님과 인사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 일을 너무 많이 줘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대표님께 남편은 “저와 결혼했지만 동아오츠카로 시집 보낸 마음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잘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이보다 더한 응원은 없다고 느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또 아이가 열살 가량 되었을 무렵, 주말에 공원 나들이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엄마, 오늘은 일 안 나가?” 라고 물었다. “우리 아들이랑 놀껀데 왜 그런 말을 해?”라고 되물었더니 “엄마는 항상 일하는 사람이니까. 난 괜찮아.
출근하세요”라고 말하더라.(눈물) 아이에게 내 빈자리가 이렇게 익숙해졌구나 싶어 아픈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자기 일에 열중하는 엄마 모습이 멋지다’며 응원하는 아이를 보면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길 매일 다짐한다.
Q. 동아오츠카가 국내 많은 스포츠 행사와 기관, 단체 등을 후원하고 있고 인천 아시안게임 공식 식음료 회사로도 선정됐는데.
A. 오는 9월 개최되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공식음료로 활동하는 포카리스웨트는 국내 1위 브랜드를 넘어 아시아 대표 이온음료로 브랜딩할 예정이다. 선수들의 체내 밸런스와 수분보충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과 다양한 장내 이벤트를 통해 관중들과 함께 응원하고, 기업홍보관을 설치해 포카리스웨트가 갖고 있는 다양한 장점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할 것이다.
Q. 여성 기업인으로서 꿈이나 포부가 있다면.
A. 최근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고 여성리더들의 활약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유리천장’이 시작하는 후배들의 열정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 후배들이 꿈을 가지고 업무에 열중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교육시스템을 마련하고, 기업의 발전을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마케팅 메뉴얼을 만들어 후배양성에 기여하고 싶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2hwangpo@kyeonggi.com
정리=김규태기자 kkt@kyeonggi.com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프로필
생년월일 : 1969년 4월1일
출신교 : 경희대 체육학과, 동국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성균관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주요경력 : ·1987 미스코리아 인천(선) - 본선 참가 탤런트상 수상
·1989 여자 필드하키 국가대표
·1992 동아오츠카(주) 입사 ~ 현재 커뮤니케이션실장/이사
·2012 경기도 여성생활체육발전위원회 위원
·2013 국민생활체육전국육상연합회 부회장
·2013 한국스카우트연맹 경기북부 이사
·2014 마케팅위원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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