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배려정치의 힘

이용성 지역사회부장 ylee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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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눈보라가 몰아친 지난 겨울 아침이었다. 차량에 수북이 쌓였을 눈에 막막한 기분으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주차장에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어림잡아 50대에 이르는 크고 작은 차량마다 와이퍼가 들려진 채 쌓인 눈이 깨끗이 청소돼 있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누군가가 새벽부터 빗자루를 들고 운전자들을 대신해 쌓인 눈을 치워준 것이다.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런 감동을 준 선행의 주인공은 다른 차량에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이곳으로 발령받은 60대 아파트 경비원이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연신 빗자루질을 하는 것이었다.

출근길 경비실로 찾아간 기자의 감사에, “주민들의 불편을 생각해 차량의 눈을 치워준 것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경비원의 미소에 따뜻한 배려심이 한껏 배어 있었다. 이날 경비원의 배려는 차량 운전자 수십명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 또 이를 전해 들은 많은 사람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했을 것이다.

‘배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상대방이나 불특정 다수를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써주는 배려야말로 삭막해진 세상을 맑고 따뜻하게 해주는 활력소다.

그런데 얼마 전 출범한 경기지역 상당수 일선 시ㆍ군의회에서는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가 없다. 볼썽사나워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시민들을 대신해 집행부를 감시ㆍ견제하고 올바른 시정방향을 제시해야 할 기초의회들이 정당간ㆍ의원간 감투싸움에 빠진 채 파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명시의회는 의장 선출에 반발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등원을 거부한 채 장외투쟁을 벌였는가 하면, 이천시의회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장 선출 과정에서 의회일정을 보이콧 하는 등 용인과 화성, 시흥시의회 등 10여곳에서 불협화음이 계속됐다. 물론 6.4지방선거를 통해 정당별 기초의원 수가 여소야대 형국이거나 동수에 달하는 곳이 12곳에 달해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초의원들이 의회와 민생은 뒷전이고 당리당략이나 자리 다툼에 치우쳐 의회가 열리지 못해 의사일정이 엉망이 되게 한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이같은 사례는 4년 전 지방의회에서도 똑같이 빚어졌다. 의장직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의원들간 갈등이 커지면서 몸싸움까지 벌어졌고, 몇 개월간 식물의회가 됐었다. 그런데 지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니 답답하기만 하다.

반면 이들 의회와는 정반대로 모범적인 기초의회도 있다. 오산시의회는 시민중심의 의회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모여 7명 전원(새정치 4명, 새누리 3명) 만장일치로 의장단을 선출했다. 이런 화합과 상생의 의회상은 반목과 갈등을 빚은 지난 6대 의회 때보다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줘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상대방에게 베풀고 양보하는 배려 정치야말로 나 자신을 위한 배려일 수 있다는 것을 오산시의회는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상쾌한 출발을 보인 오산시의회 분위기를 다른 시ㆍ군의회에 전파하기 위해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의정감시단의 기능을 제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의정감시단의 정기적인 제도적 활동 지원을 통해 시민감시단 기능을 강화하고, 그 속에서 도출되는 결과를 홈페이지와 같은 정보전달 창구를 이용해 지역 유권자들과 반드시 공유해야 한다.

이는 지속적인 감시활동으로 사사건건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는 기초의회의 폐단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또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선거의 본질을 한층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과 청렴의 의지로 선의의 감시를 통해 바람직한 의회상을 만들어보자.

이용성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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