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꼴불견 종결자

며칠 전 어느 지방에 갔다 올 일이 있어 ‘ktx’라는 고속 기차를 탔다. 기차가 너무 빨라 바깥 풍경을 볼 수는 없었다. 의자도 불편했다. 빠르다는 걸 이유로, 목적지에 금방 가니까 의자는 좀 불편해도 되겠지, 하는 철도공사 측의 마음이었는지 자리가 비좁았다. 고속 기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옛날의 ‘무궁화 호’보다 의자는 더 불편했다.

기차 여행을 하면서 풍경도 못 보고, 의자도 불편하지만 그런 건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참기 힘든 건 조용한 객실 안에서 다른 사람 아랑곳없이 목소리 마구 높여서 하는 대화와, 수시로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와 거리낌 없는 통화 내용들!

그날 내 나름대로 꼴불견들을 열거해보았다. 지금도 그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꼴불견 1: 내 바로 앞자리의 중년 여자 두 사람. 쉴 새 없이 떠들며 발까지 구르기도 했다. 듣자하니 거개가 다른 사람 흉을 보며 둘이 ‘맞아, 맞아’ 하며 같이 우쭐감을 느끼는 듯. 어느 순간엔 둘이 같이 손뼉을 치기도 했다. 가는 내내 시끄럽게 하는데 잠깐도 쉬지 않는다. 저 사람들은 입도 안 아플까? 괜한 걱정까지 했다.

꼴불견 2: 내 자리 오른쪽의 앞자리 사내. 전화기로 계속 업무를 보았다. 전화가 울리면 그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예 차장님, 네 부장님’ 해가면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마구 꺾었다. 영상 통화라도 하는지, 원….

꼴불견 3: 바로 내 옆자리 여자.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하는 전화 통화. 안 들으려 해도 들리니 그것도 참 고역이었다. 가만 들으니 형부를 ‘야단’ 쳐주었다는 얘기이다. 형부랑 결혼한 언니가 오빠 아래인 듯. 형부가 오빠보다 나이는 더 먹었지만 엄연히 오빠가 손 위인데 형부가 오빠한테 ‘형님’이라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자신이 형부인 ‘그놈’ 버릇 고치려고 엊저녁에 4 시까지 술 마시며 전화해서 2시간 가까이 ‘야단’ 쳐주었더니, 형부가 처제 말 잘한다고 했단다. 자기가 원래 말을 잘한다고 우쭐해 했다. 언니 ‘그년’도 ‘나쁜 년’이라며 욕을 했다. 본인부터 위아래가 없는 사람이었다. 더욱 가관인 건 여기저기 전화하여 똑같은 내용을 재방송 하며 자신의 무용담을 전하는 것.

꼴불견 4: 뒷자리에서 전화 통화 하는 남자 목소리.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 이 사람도 기차가 가는 내내 전화‘질’을 했다. 별 내용도 없더구만.

꼴불견 종결자: 눈을 억지로 감고 있다가, 어느 순간 떠서 무심코 열차 천장에 매달린 텔레비전을 봤다. 그런데 총리가 ‘청문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완벽한 사람 없어… 국민 눈높이 낮춰줬으면’이라는 자막이 떴다. 공직자 후보들을 옹호하는 총리의 말이었다. 국민들이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하여튼 총리의 발언 자막에 눈살이 더 찌푸려졌다.

열차 안의 시끄러운 사람들을 향해 마침내 어떤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객실에서 나가서 떠들고, 전화도 밖에 나가서 합시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사람들은 꿋꿋하게 떠들고 통화했다. 국민들 눈높이가 결코 높지 않다는 것 목격했다. 공직자 후보들만 국민들 눈높이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총리가 눈높이를 낮춰줬으면 하는 말을 했겠지.

박상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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