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만곡족(彎曲足ㆍ소아마비)으로 짧고 휘어진 오른쪽 다리.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와 불거진 입. 어떤 양복을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 가냘픈 체구.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著)의 첫 장(章)은 그를 ‘신이 경멸받고 조롱받도록 만들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괴벨스의 어린 시절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점철됐다. ‘민족의 자유’라는 신문사에서 일할 때까지도 그렇고 그런 언론인이었다.
그가 26세 되던 해 인종주의자 체임벌린의 ‘19세기의 기초’를 접한다. 뼛속까지 반(反)유대인 정서로 물드는 계기였다. 이어 만난 히틀러와의 조합이 비극이었다. 타고난 언변과 문장력으로 히틀러의 정신을 지배했다. 라디오와 TV를 독재에 이용하는 천재성도 발휘했다. 독일 국민 모두에게 라디오를 보급했고, 베를린 올림픽을 사상 최초로 세계에 중계했다. 그의 궤변 말 한마디가 전쟁을 이끌었고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 괴벨스를 생각하게 하는 요 며칠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 지명자를 두고 벌이는 ‘반민족주의자 논란’과 ‘친일 논란’이다.
이미 대중은 넘어갔다. ‘일제 식민지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는 얘기에 분노가 들끓는다. 일본 위안부 출신 할머니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를 지명한 대통령의 인기도 급락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부정평가 48%, 긍정 평가 43%였다(6월17~19일 전국 성인 남녀 1002명 조사ㆍ신뢰수준 95%±3.1%). 놀란 여당까지 문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반민족 주의자’, 그리고 ‘친일파’…. 너무 충격적이어서 오금이 저리거나 너무 우스워 배꼽이 들락거리거나다.
문제의 강연은 1시간 5분 55초짜리다. ‘병기고가…관리들의 부패로…무기가 없고…누더기 몇 조각과 고철 덩어리만 있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어린 딸을 쌀 한 가마에 팔고 있다’는 선교사의 책을 소개했다. ‘그럼에도 조정은 나라에 관심 없고 이씨 왕조 지키기에만 매달렸다’며 구한말 상황을 지적했다. ‘이런 나라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시련을 준 것이며 그 결과 우리가 잘살게 됐다’가 소(小) 결론이다.
‘남북 분단’ 관련도 실제는 다르다. ‘구한말 조선의 지식층이 유학을 갔는데 대부분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만 매달렸다. 과학이나 의학처럼 조선에 필요한 학문은 외면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사회주의를 이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해방 후 통일 한국은 사회주의로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문 지명자의 생각이 아닌 윤치호의 일기를 인용한 부분이 많다. 구한말 지식층의 정치지향적 병폐를 지적한 말이다.
강연은 이렇게 끝난다. ‘동북아 시대가 열렸다. 하나님은 한국을 세계의 중심 국가, 세계의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더해진 마지막 화두는 대한민국 교회의 반성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된다. 다른 사람 손가락질할 것 없다”. 수백명의 기독교인을 앞에 두고 그는 한국 교회의 개혁을 주문하면서 강연을 끝냈다.
반민족 주의? 친일 사관? 강연 어디에 그런 얘기가 있나. 혹 지금의 이 영상과 다른 별개의 영상이라도 있나.
문 지명자는 보수 논객이다.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오는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칼럼 역시 속죄의 대상이다. 그게 칼럼리스트가 짊어져야 할 운명이다. 하지만 1시간 5분 55초짜리 강연은 아니다. 아무리 침소봉대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가선 안 된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말했다. “동영상 칼럼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사람을 반민족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경위 자체가 오싹하다.”
괴벨스는 1945년 5월 1일 밤 10시 자살했다. 바로 이틀 전 히틀러 시신에 자기가 했던 그대로의 ‘역할’을 휘발유 두 통을 들고 따라온 운전기사 ‘라흐’에게 부탁했다. 그가 저질렀던 죄만큼이나 참혹한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의 정점에서 사라졌다. 독일인들이 그의 거짓말을 알아챘을 때 그는 이미 없었다. 남은 독일인들이 떠안은 건 역사 앞의 사죄와 유대인 앞의 책임뿐이었다. 성공한 대중선동의 끝은 늘 그랬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괴벨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괴벨스 부활과 문창극 죽이기]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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