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고노담화를 무력화하는 일본

지난 20일 일본 정부가 1993년의 고노담화는 한일 양국 간의 외교적 산물이라고 격하시켰다. 그러면서 일본은 분명히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미 담화의 신뢰성이 훼손된 상태에서의 입에 발린 미사여구일 뿐이다.

고노담화는 일본이 위안부 동원과정에서 군의 개입과 강제성을 인정한 것으로 당시의 관방장관인 고노 요헤이가 발표한 성명서이다. 일본이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솔직한 고백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고노담화 이후 한일관계는 급속히 좋아 졌었다.

그러나 일본의 극우파들에게 고노담화는 일본의 자존심을 짓밟은 눈엣가시 같은 발언으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수치였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담화의 취소 내지는 수정을 끝없이 요구했었다.

강한 일본 재건을 선언하고 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고노담화의 수정을 목표로 끈질긴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이후 한일관계는 물론 세계 여론이 나빠졌고 미국마저 등을 돌리는 상황이 발생하자 아베는 임기 중에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미국의 주선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집권 후 최초로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었다. 고노담화는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은 집요하게 고노담화를 검증을 했고 드디어 수정보다 더 치욕적인 모욕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즉, 아베 내각은 고노담화 발표 직전의 한일간 회담 전모를 밝힘으로서 일본의 자발적인 반성이기보다는 한국의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한 발표였다고 평가절하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고노담화는 외교적 수사였을 뿐이며 법적인 보상은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끝났고 더욱이 한국이 동의한 아시아여성기금으로 금전적인 보상까지도 완결되었다는 것이 금번 발표의 핵심이었다.

우리로서는 매우 모욕적인 발표였다. 앞으로 일본은 이렇게 외교적 거래를 통해 작성된 고노담화는 반드시 폐기시키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는 사적인 이익을 위한 기업의 개입이었지 정부의 관여는 없었다는 과거의 주장을 되풀이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 일본은 더 이상 과거를 반성할 필요가 없는 보통국가를 지향하며 군사대국을 위한 발걸음을 더욱 넓힐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본의 조치에 우리 정부는 양국 간의 외교 내용을 밝힘으로서 일본과의 모든 신뢰는 깨졌고 더욱이 고노담화는 일본의 자주적인 결정임에도 마치 우리 정부가 요구한 것처럼 왜곡했다며 반발했다. 중국도 일본의 뻔뻔한 역사부정이라며 강력히 규탄했고 한미일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미국 역시 고노담화의 귀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요지부동이다. 이미 갈 때까지 간 극우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이러한 조치에 당장의 반발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조금은 냉정해 질 필요가 있다. 일본의 이러한 안하무인적인 발상에 우리는 반성할 점이 없는가를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여전히 학계에서는 식민지근대화론이 거론되고 친일사관으로 똘똘 뭉친 자가 총리후보자로 거론되는 등 시대착오적인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중용되고 있다. 아베에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는 대통령과 내각의 구성원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대한 항의 역시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반박성명뿐인 매우 미온적이다.

위안부 문제는 언제까지 일본의 사과와 배상요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국제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들과 손잡아 아베 내각을 고립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자주적인 역사교육 강화는 기본이다.

임형진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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