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고급 기술의 연구 기지

필자는 종종 교육기부라는 명목으로 매년 이맘때쯤 되면 고등학생의 진로 설계를 위해 주변의 고등학교를 방문하곤 한다. 예전 필자가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본인의 꿈과 비전을 기반으로 한 제대로 된 진로지도가 거의 없었다.

4:1 이상의 4년제 대학 경쟁률 때문인지 진로 설정은 대학 선택에 집중되어 있었고, 전공에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전공과는 상관없이 명문대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성적에 맞추어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곤 했다.

따라서 대학 입학 후, 전공 때문에 고민하는 주변의 지인들이 종종 있었으며, 요즘처럼 전과 및 복수전공과 같은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힘들게 대학생활을 마친 지인들도 꽤 있었다. 요즘은 대학 경쟁률이 1:1 정도이다.

향후 그 경쟁률은 더 낮아져 특정 전공을 제외하고는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고등학교 학생들의 전공의 선택에 있어서 이를 위한 보다 친절한 지도가 필요해진 것이다.

며칠 전 경기도의 B 고등학교를 방문했었다. 필자를 포함해 변호사, 사진작가, 화장품유통, 생명공학관련 연구원 등등 여러 분야의 강사가 초빙됐다. 필자가 담당한 학생들의 진로 영역은 전자공학이었다. 대학생 및 대학원생에게 전공관련 교과목을 강의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고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진행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생각보다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 놀랐으며, 전자공학의 구체적인 응용까지 궁금해하는 학생이 있었다. 3D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있는 학생, 로봇과 사랑에 빠진 학생, 전자공학에서 바라본 소프트웨어를 궁금해 하는 학생 등 생각하지 못했던 학생들의 질문에 놀랍기도 했지만 매우 즐거웠다.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컴퓨터 공학과를 선택하기도 했던 1980~1990년대를 생각하면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기술의 발전이 유통산업의 진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시장의 주도권이 제조업계에서 유통업계로 넘어가고 있다. 소비자가 편하게 접하는 가전제품의 경우, 생산방식, 생산가격에 따라서 제품성능의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가격의 차이에 비해 소비자가 느끼는 성능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첨단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아니더라도, 혹은 중국제품이라도, 그 성능이 최첨단 제품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마트 혹은 홈플러스에서 판매하는 유통업체 상표의 전자제품과 같이 소비자의 관심을 받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더 이상의 방어가 힘들 지경까지 온 듯 하다. 고급 기술의 경우, 몇몇 분야는 일본을 넘어섰다고 자만하지만, 많은 분야에서 아직까지 일본이라는 거목에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국내의 많은 공과대학 중에 외국인 대학원생이 없으면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는 곳이 많다. 교육을 통한 국제협력 구축이라는 면에서 외국 대학원생을 유치하고 국제화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많은 대학에서는 대학의 존폐를 걸고 학생유치를 한다.

10년 후 한국의 이공계는 어떻게 될까? 현재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이 줄고 있으며, 이공계 지원 학생도 같이 줄고 있다. 이로 인한 향후 연구·개발 능력을 갖춘 고급 인력의 부족이 쉽게 예상된다.

이를 맞닥뜨리기 전부터 미리 대비해야 한다. 기술로 일구었던 한국의 발전을 계승할 이공계 고급 기술인력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부터 바꾸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본인의 적성을 고민하고, 이에 대한 꿈을 가진 고등학교 학생이 그 전자공학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고급 기술의 연구 기지로서 한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교범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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