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종중으로부터 종중 소유의 토지를 명의신탁받아 보관 중이던 을이 자신의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할 돈을 차용하기 위해 1995년 위 토지에 1천4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횡령죄가 성립되었는데, 그 후 2009년 을이 같은 토지를 1억9천300만원에 타인에게 매도하였다면, 을이 2009년에 매도한 행위를 별도의 횡령죄로 처벌할 수가 있는가?
형법상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인 경우와 같이 처분하는 의사(이를 불법영득의사라 합니다)를 본질적 요소로 하는데, 이러한 생각으로 한번의 횡령행위가 있었다면 그 횡령행위는 위 토지 전체에 대하여 내 소유인 것처럼 생각한 횡령죄가 성립되므로, 그 후에 위 토지를 새로이 처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미 내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을 다시 처분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것을 보관하다가 처분하는 것이 아니니 별도의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실 이러한 견해가 종전의 대법원 판례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종전의 판례를 폐기하고 새로운 판례를 내놓았습니다. 새로운 대법원 판례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횡령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에 관한 소유권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그 법익 침해의 위험이 있으면 침해의 결과가 발생되지 아니하더라도 성립하는 위험범이다.
일단 ‘선행 처분행위’로 인하여 법익침해의 위험이 발생함으로써 횡령죄가 기수에 이른 후 종국적인 법익침해의 결과가 발생하기 전에 새로운 ‘후행 처분행위’가 이루어졌을 때, ①후행 처분행위가 선행 처분행위에 의하여 발생한 위험을 현실적인 법익침해로 완성하는 수단에 불과하거나 그 과정에서 당연히 예상될 수 있는 것으로서 새로운 위험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후행 처분행위에 의해 발생한 위험은 선행 처분행위에 의하여 이미 성립된 횡령죄에 의해 평가된 위험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후행 처분행위는 이른바 불가벌적 사후행위로서 처벌할 수 없지만, ②그러나 후행 처분행위가 이를 넘어서서, 선행 처분행위로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위험을 추가함으로써 법익침해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키거나 선행 처분행위와는 무관한 방법으로 법익침해의 결과를 발생시키는 경우라면, 이는 선행 처분행위에 의하여 이미 성립된 횡령죄에 의해 평가된 위험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별도로 횡령죄가 성립한다.
“이러한 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위 사례에서, 을이 1995년에 1천400만원 상당의 근저당 설정행위를 함으로써 이미 위 금액 상당의 횡령죄가 성립되지만, 아직 위 근저당권에 기해 경매가 진행되지 않아 종국적인 법익침해가 발생하지는 않았고 단지 언젠가 경매처분될 위험이 있는 상태일 뿐이므로, 이러한 상태에서 다시 위 토지 전부를 완전히 처분하는 2009년도 매도행위는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킨 것이라는 이유로 횡령죄로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한 번 횡령죄가 성립되었다고 해서 안심하고 또 횡령을 하다가 다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횡령을 하지 않는 것이 이롭겠죠.
심갑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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