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판이 깨지기 전에 한숨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최근 베스트셀러 중에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란 책이 있다. 클린턴 정부시절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라이시라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쓴 책으로 중산층에 대한 시각과 관련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작년에 큰 화제를 일으켰던 ‘불평등의 대가’ 역시 마찬가지다.

평생 경제적 불평등을 학문의 주제로 삼고 연구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혜안을 보면 왜 오늘날 불평등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지, 불평등이 심화하면 사회 시스템 전체가 장기적으로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묵직하게 알려준다.

위 두 권의 책이 주장하는 바는 의외로 단순하다. 여러 명이 참여해서 게임을 하는 포커판을 한번 생각해보자. 경제는 다양한 경제 주체들이 함께 벌이는 포커판과 같다. 판돈이 일부 부유층에 모두 몰리면 돈이 떨어진 일부 계층은 계속 게임에 참여하려고 돈을 빌리거나 저금 등의 여유자금을 깰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돈마저도 모두 잃으면? 경제가 포커판과 다른 것은 포커판에서는 돈을 잃은 사람이 다음에 잃은 돈을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경제는 판이 일단 깨지면 다시 열기 어렵고 돈을 딴 사람이든 잃은 사람이든 다 같이 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 저자들은 중산층 몰락이 모든 경제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생각한다. 1920년대 미국을 휩쓴 대공황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중산층의 소득 수준이 떨어져 이들의 구매력이 저하되어 생긴 문제이며, 2008년 금융 위기는 포커판에서 돈이 떨어진 중산층이 기존 저축을 깨고 외부에서 자금을 차입하면서까지 게임에 참여하다 결국에는 모두 돈을 잃어서 생긴 문제라는 시각이다.

여기서 문제는 게임의 공정성이나 부자들의 불법성과는 관계가 없고 이유가 어떻든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해지며 중산층이 공동화되는 것이 전체 경제게임의 판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분히 불공정한 측면이 있더라도 다 같이 살려면 게임의 룰을 바꿔서라도 중산층이 늘도록, 그래서 그들이 계속 포커판에 남아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문득 필자는 미국 석학들의 주장에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적합업종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스쳐 지나갔다. 일부 학자들은 통상문제나 법치 등 다양한 이유와 논리를 내세워 현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그러한 주장은 현재의 판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이 공적으로 몰려 폐지된 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대부분 업종에서 대기업의 진출로 중소기업이 거의 고사 직전에 몰렸다. 국수제조업만 해도 제도 폐지 전에는 시장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이었지만 이제는 불과 10%도 안 된다.

옛날의 골목길 국수방의 추억이 사라진 것은 둘째 치고 그동안 국수의 품질이나 소비자 편의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다. 대신 시간이 지나면서 판돈을 잃은 중소기업의 늘어가는 한숨 소리만 필자에게 강하게 들린다.

‘Too big to fail’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토록 자유와 정부 불간섭을 강조하는 미국정부도 금융위기 때 월가의 내로라하는 금융인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재무부장관이 직접 관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먹을 내보이며 ‘반항하면 모두 죽어’라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판이 깨지면 모두 죽는다’는 절박감과 위기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왜 우리에게는 미시적인 합법성과 함께 전체 판을 아우르는 대세관을 갖춘 전문가들, 지식인들의 강직한 목소리는 없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울창한 숲은 소수의 큰 나무만으론 절대 이룰 수 없다.

건강한 숲은 큰 나무와 작은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멋진 숲이 되고 생명이 살 수 있는 법이다.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로 같이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서승원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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