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이 빨개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마디로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국민들의 팍팍한 삶 곁에서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찾겠노라 정치를 하는 자들이 누구랑 친하니까 뽑아달라고 하는 어린아이나 하는 짓을 하고 있으니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하다. 자질과 능력으로 선택받겠다고 노력하기는커녕 겨우 유력 정치인과 친하니 뽑아달라는 것은 유권자 모독죄다.
이러한 정치구태를 지적하기는커녕 누가 누구보다 보스와 더 친하다고 떠드는 언론, 누구와 사진 한번 더 찍은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균형감각을 잃은 사회단체들을 보고 있으면 더 비극적이다.
지방선거가 본격화되자 후보자들은 부쩍 ‘서민 이미지’에 신경쓰고 있는 모양이다. 햄버거 번개 미팅을 하고 아이돌 그룹 노래에 맞춰 춘다거나 출근길 교통정리에 나서기도 하고 노숙인 급식소를 찾아 배식 봉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유권자의 바람과 달리 선거 때에는 표를 얻기 위해 이미지에 신경을 쓰면서 정작 평상시에는 시급한 민생은 제쳐놓고 특권누리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평시에는 팍팍한 서민들의 삶에는 전혀 관심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서민 코스프레에 열을 올리는 것은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정치권은 한 때 3김 시대 청산을 외쳤다. 보스ㆍ밀실정치 등으로 명명된 비민주성과 폐쇄성을 극복하고 정치 본연의 목적인 사회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는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구호였다.
그러나 매니페스토운동을 하고 있는 내 눈에는 지금의 정치는 3김 시대보다 더 뒷걸음질치고 있는 모습이다. 그때는 그래도 드물지만 당리당략에 앞선 지역의 문제점 해결방안과 미래비전을 호소하는 정치인이 있었다. 반대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디어로 압도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였다. 기성정치를 타파하고 젊은 정치시대를 개척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국민과 국가에 기여하고자 하는 책임이 강했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여주는 정당과 후보자의 거꾸로 가는 정치구태를 보는 마음은 매우 착잡하다. 3김 시대를 추억해야 하는 현실이 갑갑하다. 그러면서 새정치를 하겠다는 후보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데, 조금더 기다려보면 좋아지겠지 하는 그런 기대와 위안으로 인내심을 더 가져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고 선거에서의 주인공은 유권자다. 특히, 선거에서 유권자는 슈퍼울트라 갑이다. 결국 유권자가 준비해야 한다. 자질과 능력은 전혀 없으면서 누구와 친하다는 말만하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눈여겨보았다가 선거에서 심판하자. 평상시에는 ‘나몰라라’ 하다가 선거 때면 어설픈 서민흉내 내는 후보가 누구인지도 가려내야 한다.
정치가 부끄럽다. 그러나 고쳐 써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이, 선거에서 주인공이여야 할 유권자가 정치가 부끄럽다고 외면하지 말자.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은밀하고 위대하였다. 조금더 기다려 봐야겠지만 고장 난 민주주의를 고치기 위해 은밀하게 준비하자. 선거에서 관객 취급하던 정치권의 버릇을 이번 선거에서 꼭 고쳐주자. 정치개혁과 행정혁신 선언, 구체적인 비전으로 경쟁하라는 국민명령인 매니페스토운동을 펼쳐보자.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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