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지난 일부터 얘기를 꺼내려 한다. 지난해 12월27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는 국악 송년음악회가 열렸었다. ‘사노라면’이란 주제로 소리꾼 장사익과 경기도립국악단이 함께 무대에 올랐었다. 소리 인생 20년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의 반열에 오른 ‘7집 가수’ 장사익.
그를 도립국악단의 무대에 세우기 위해 조경환 국악단 기획실장은 국내는 물론 일본 등지까지 찾아가는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는 전석 매진이었다. 국악단의 웅장한 연주와 장사익의 ‘찔레꽃 처럼 살았지’하는 절절한 노래자락을 듣던 수많은 중장년들이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둘은 관객의 머릿속에 ‘환상의 콤비’로 각인됐다.
그리고 3개월. 지난 26일 오후 4시 인천국제공항의 오픈 무대인 밀레니엄 홀에서 장사익과 경기도립국악단이 다시 만났다. 개항 13주년을 맞아 열린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의 첫 무대였다. 인천공항은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다. 지난 공연이 지역민을 위한 자리였다면, 이번은 세계인을 상대로 국악의 우수성을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반드시 정돈된 프로시니엄일 필요는 없다. 탁트인 무대에서 국악의 향연이 공항 터미널에 널리널리 울려퍼질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공연은 국악단원들의 관현악 연주만으로 구성된 ‘아리랑’으로 막을 올렸다. 간드러지는 해금 소리로 차분하게 시작된 연주는 절정으로 갈수록 속도와 웅장함이 더하더니 종국에는 김응호 악장의 가는 대금소리로 깊은 여운을 남기며 끝났다. 김미영 단원의 해금 협주곡 ‘추상’은 절로 듣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고,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한 윤은화 단원의 목금 연주는 공항을 자연 속으로 탈바꿈시켰다. 오색 한복을 입고 등장한 명창 최근순 선생 등 단원 5명은 긴아리랑, 창부타령, 경복궁 타령 등을 들려줬다. 능수능란한 발림과 ‘아니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하는 가사 속에 좌중은 어깨춤을 들썩거렸다.
그리고 하얀 도포차림의 장사익이 등장하자 객석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공연장 주변 바인더에도, 윗층 난간에도 군중들이 빼곡이 몰려들었다. 그가 ‘티끌 같은 세상, 이슬 같은 인생’으로 운을 뗀 뒤 ‘봄날은 간다’, ‘찔레꽃’을 연달아 부르는 사이 객석 분위기는 클라이막스로 끓어올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듯 토해내는 장사익의 절창(絶唱)과 국악단의 열정 넘치는 연주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기력을 쏟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맺힌 장사익에게 김재영 지휘자가 손수건을 건넸다.
앵콜이 쏟아졌고, 국악단과 장사익은 ‘아리랑’으로 화답하면서 장중은 하나가 됐다. 넋을 잃고 협연을 지켜보던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도 음정을 흥얼거리거나, 엄지를 추켜세우며 브라보를 연발했다. 그렇게 장사익과 도립국악단은 국악을 세계에 전파하고 있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