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필시 사람들도 겨울을 지내는 동안 봄이 오기를 고대했던 것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무슨 아이돌 스타가 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겨우내 한산했던 공원과 시장 통을 가득 메우기가 쉬운가 말이다.
필자도 그 대열을 따라 공원과 시장을 다녀왔다. 확실히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있다. 나무들도 벌써 움이 텄다. 그런데 이런 계절의 특징 중의 하나가 실외는 따뜻한데 실내는 춥다는 것이다.
물론 아파트 같은 좋은 주거환경에서 사는 분들은 인정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겨울에는 연탄이든 전기든 혹은 가스든 방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것으로 도움을 받겠지만 살을 에는 듯 한 추위가 지나면 자연히 난방기를 치우고 대신 두꺼운 이불을 깔고 덮는다.
하루 12시간을 보내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인 공장도 봄이 오면 난방기를 치운다. 그래서 봄이 되면 이주노동자들은 공장에서나 집에서나 어쩌면 겨울보다 더 추운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 그래도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신정, 설 같은 명절이라도 있어서 휴일을 챙길 수 있었고 인심 좋은 사장님들은 적지만 보너스라도 챙겨줬는데 봄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어제 토요일 오후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공장과 그들 중 한분의 집을 방문했다.
거기에도 봄은 공장마당 한편에 있는 자그마한 화단까지 찾아와 있었다. 역시 숙소 이층에 사시는 주인집 창가에 있는 화분에서도 봄을 느낄 수 있었다.
2층 다세대 주택에 들어서서 정문에서부터 집을 돌아 뒤쪽으로 가면 반지하 입구가 보인다. 언제나 그늘져 있어서인지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쌀쌀하다. 그 찬바람을 몰고 방안으로 들어가면 실내의 기온은 오히려 조금 전의 바깥 기온보다 훨씬 춥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는 모든 대지를 꽁꽁 얼려놨지만 봄바람 앞에서는 힘없이 녹아내리고 숨어들어가 버릴 정도로 봄은 막강한 힘을 가진 것 같다. 그러나 여기 반지하에는 그 힘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청와대에서는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관련 뉴스들을 쏟아냈다. 이를 지켜보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뭔가를 기대하면서 반기는 눈빛이다. 봄이 주는 꽃소식 이상으로 설레는 소식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규제에는 상당부분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위하고 평등과 질서를 위한 것들과 오래전에 만들어져 시대에 걸맞지 않고 더 이상의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 줄의 글자에 의해서 중요한 발전과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기회에 그런 것들을 잘 가려서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들이 많이 생기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계절은 바뀌고 있고 사회는 발전해가고 있는데 150만 명의 이주민들은 철창같은 규제에서 오늘도 노동과 최저임금의 경계선에서 길들여져 가고 있다.
10여 년 전, 중국의 조선족 자치현인 장백에 갔었다. 그곳에 있는 조선족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에 한국에서 불쾌한 일을 겪으셨던 어르신 한 분이 말씀하시기를 “한국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우리 중국의 몇 개 도시보다 못하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필자는 그 분의 감정과 기분을 최대한 이해하면서도 속으로 “중국은 발전한 몇 개 도시 뿐만 아니라 발전하지 못한 절대지역들도 포함해야 중국이다”고 생각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아무리 발전하고 평온한 복지국가로 간다한들 봄볕을 받지 못하고 사는 3%의 이주민들을 떼어놓고 대한민국 발전을 자랑할 수 없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이주민들을 포함한 공동체임을 잊지 말자.
김철수 목사(사랑마을이주민센터대표)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