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 취업용 성적표를 발급하고 학점포기를 허용하는 것은 극심한 대졸 취업난 속에서 졸업생들의 취업을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은 있다. 그러나 최고의 교육기관인 대학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겠다.
대졸취업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너무 많은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인데, 대학진학률이 최근 수년간 떨어지는 추세이나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앞으로는 상당수의 대학이 정원을 채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모두 입학자원 부족문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고, 특히 호남권과 대경권의 문제가 가장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학, 특히 지방대학들이 학생모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앞으로 5년간 1조 원을 투입해 ‘명품 지방대’를 육성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120개 대학 중 60개 대학이 선정될 전망인데, 2천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는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두뇌한국21 플러스’ 올해 예산 2천900억원의 70%에 상당하는 수준으로 서울 등 수도권 대학에는 해마다 540억원씩 5년 동안 지원할 예정이다. 지방대학은 수도권 대학의 약 4배에 해당하는 특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는 것이다.
지방대학 중 이미 상당수의 대학은 명품대학의 수준에 있기 때문에 일부 수도권 대학에서는 역차별이라는 볼 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수 1인당 논문 수는 상위 20곳 중 9곳이 지방대학이며, 지방 국립대 중에서는 졸업생 취업률과 졸업생 평판도 등에서 수도권 대학을 능가하는 대학이 상당수 있다.
정부의 지방대학 특성화 대책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는 대학이 자리 잡은 지역의 산업과 연계해서 대학이 특성화하는 ‘지역전략’ 부분이다. 지방대학 특성화가 성공하면 수도권 학생들이 지방대학으로 몰려올 것이라고 교육부는 전망하고 있으나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분석에 의하면 이미 상당수의 수도권 고등학생들이 지방대학에서 공부는 하나 취업은 수도권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RIVET Issue Brief, 2014년 1월 30일 44호)
지방대학 출신 취업자 중 38.7%가 수도권 소재 기업에 취업하는데, 이 중 43.2%가 수도권소재 고등학교 출신이다. 지방대학 출신 졸업자의 62.7%가 지방소재 기업에 취업하며, 이중 지방 고등학교 출신은 94.8%이며 수도권 고등학교 출신 지방대학 졸업자는 83.2%가 수도권으로 돌아가 취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대학이 수도권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을 교육해 수도권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들이 미국 학생들을 교육해 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과 같다. 수도권과 지방의 경제 격차를 고려하면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닌 듯하다.
수도권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이 지방대학에서 공부하고, 그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정부의 지방대학 육성 대책이 더욱 많은 국민에게 지지를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정부의 지방대학 특성화 대책의 궁극적인 성패는 지방경제의 활성화에 상당 부분 좌우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박영범 한국직업능력개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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