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관(棺) 옆에서 딴청 피울 여유가 없다

지난 2010년 이래, ‘린드너(Lindner)’라는 한 폴란드 관(棺) 제작회사의 마케팅이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왜냐하면 린드너가 자사의 관들을 홍보하기 위해 관들에 선정적인 포즈로 밀착한 미녀들의 사진을 자사의 달력에 실어 매년 배포해왔기 때문이다. 즉 관만 없다면 사실상 ‘성인화보 달력’과 다를 바가 없는 도발적인 달력을 매년 제작, 배포해온 것이다.

이에 폴란드의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보수층은 린드너가 인간의 죽음을 모욕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린드너는 이 마케팅 덕분에 매달 1만1천개의 관을 생산하는, 폴란드 최대의 관 제작회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국가ㆍ민생문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따라서 린드너는 “우리는 이 달력을 통해 폴란드 여성과 우리 회사가 만든 관의 아름다움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리고 관은 사람들이 마지막에 영원한 잠자리에 드는 하나의 가구일 뿐”이라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일축하고, 올해에도 매우 선정적인 5만 원짜리 화보달력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비록 린드너의 마케팅이 창의적이고 기발할 뿐만 아니라 실제 효과도 크다는 점에서, 즉 상업적인 가치기준에서 볼 때 린드너의 마케팅은 칭찬할 만하지만, 모든 인류가 숙연하게 마주해야 할 인간의 죽음이라는 비통함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는 점에서는(종교인인 내 입장에서는) 린드너의 마케팅 방식을 수용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아마도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우리나라 정치권의 최근 모습과 린드너의 발칙한 ‘성인화보 달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외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가?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열강들이 노골적으로 벌이고 있는 외교군사적 힘겨루기에서 자칫 희생양이 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해묵은 민족감정과 일본의 뻔뻔한 도발행위를 잘 알면서도,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외교군사문제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일본의 편을 들고 있다.

이 와중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국빈으로 환대했던 중국은 느닷없이 대한민국의 영해 위에 자신의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해버렸다. 이에 대해 미국은 자국과 우방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중국에 대한 강력한 무력시위를 벌였다.

마침내 우리나라의 군은 비판적인 국내여론과 미국, 중국, 일본의 눈치를 살피며 허둥지둥하고 있으며,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이 무모한 힘겨루기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사태 때문에 고사(枯死) 직전인 수산업, 갈수록 악화되는 주거와 일자리 문제로 절망에 빠진 서민들, 판박이로 반복되는 내부비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공공기관들과 대기업들 등등, 현재 온전한 사회주체가 사실상 없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공공부채를 비롯하여 당장 해결해야 할 국가 및 민생 문제들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한마디로 현재 대한민국은 관 속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정치권의 끝 모를 다툼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국가적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다. 이미 검찰도 만신창이가 되었고, 급기야 종교계를 포함한 사회 각계각층들이 내분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권 끝모를 다툼 국가 에너지 고갈

성경 속의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도 딴청만 피우는 지도자들 때문에 망하고 말았다.

유다가 가까스로 재건된 후에도, 지도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해득실만 따졌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조차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결국 그들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마가복음 13:2) 완전히 패망하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너무 늦기 전에 여의도가 국민들의 피눈물을 살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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