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정치다”라는 슬로건은 1992년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빌 클린턴 선거운동본부의 캠페인 문구인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를 역설적으로 카피(copy)한 것이다. 당시 경쟁자였던 공화당 조지 부시와 무소속 후보인 로스 페로와는 차별적으로 국내 문제 중 불경기에 대한 이슈를 선점해가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정치의 임무와 역할이 경제문제 해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은 허구한 날 싸우는 자로 각인되어있는 듯하다. 정치를 하다보면 싸울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여야가 싸움 파트너로서의 역할에만 몰두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국론분열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연방정부와 의회의 충돌은 연방정부를 폐쇄시킬 뻔 했지만, 공화당과 민주당간의 국가부채 논쟁은 미국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이념대결과는 대비가 된다.
작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시작됐던 NLL 관련 노무현 대통령 대화록 논쟁과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사건이 1년 째 지속되면서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NLL은 포기하지 않는다’고 공동 확인 및 확약을 한다면 이 문제는 뻔히 끝이 보이는 논쟁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당들이 이념과 패거리 정치의 볼모가 되면서, 보수ㆍ진보 진영의 대리전의 전위부대로 전락하고 있는 양상이다.
과거 한국정치는 여당과 야당간의 극한 대립의 역사였다. 1980년대까지 정치체제의 정통성 시비로 일관되어온 정당간의 치열한 경쟁은 정당으로서 정상적인 역할 수행을 불가능하게 했고, 정당 내부 질서는 항상 비상체제였으며 당연히 비민주적이였다. 종국적으로 여야는 서로를 부정했다.
서로를 음해하고 죽이는 야만의 정치가 한국 정당사의 과거였다면, 지금의 여당과 야당은 과연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소위 87년 체제 민주화 이후 사반세기가 지나고 있지만 한국 정당정치는 한 치의 진화도 없는 듯하다.
선진국가는 기본적으로 민주국가에서 출발한다. 정치의 민주적 기초가 무너지면 이미 후진국가인 것이다. 한국은 지금 정치가 문제다. 민주적 정당정치의 기본 골격인 정권교체형 여야대결구도가 무너진 지 꽤 됐다.
현재는 정치가 문제이지만 국가적 문제의 해법도 정치에서 나온다. 한국 정치가 우리의 경제와 사회문화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날이 올 때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보다도 대통령의 민주적 협조가 긴급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필자는 ‘참여정부 통치철학의 정립은 집권세력의 코드일치보다는 국민과의 코드일치에 초점을 맞추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라는 고언을 한 적이 있다. 정반대의 정부(政府) 성격과 성향인 박근혜 정부에게도 똑같은 주문을 하고 싶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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