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의 맛, 시원한 국밥 ‘뚝딱’
식당을 통틀어 남동구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집이어서 그래도 남다른 품과 격을 가졌으려니 했는데 그렇지는 못했다. 호구포식당은 남동구 논현동 111번지, 지금은 754번 버스 종점 마당이 된 옛날 수인선 소래역 공터 맞은편에 자리잡은 낡은 건물의 소머리국밥과 백반을 파는 집이다.
주변은 완전히 신도시가 되어 있는데 이 호구포식당을 끼고 있는 일대만 구태 그대로다. 근처의 비슷한 상점들도 모조리 세월에 뒤진 허름한 모습으로 먼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식당 앞 소래포구로 들어가는 구 도로 역시도 다 지워져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이제는 통행하는 것조차도 쓸쓸하고 고단할 것 같은 심정이 든다.
올해로 45년이 되는 이 호구포식당도 머지않아 헐려 문을 닫고 말 것이다. 소래가 이처럼 대단한 고층 아파트 지대로 바뀐다면 여기만 이런 꼴로 남겨 두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붓 짧은 글이 마지막 행장기나마 되는 것인가.
“차라리 그게 나을지….”
올해 76세, 소래 갯골 건너 이웃 월곶 출신인 주인 안옥순씨는 미구에 닥칠 운명을 차라리 남의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 담담한 목소리에는 끝끝내 함구하고 만 어떤 한(恨)과 원(願)이 서려 있음을 느낀다.
그런저런 사연 속에 처음 식당을 시작한 것은 밥이나 먹고 살자는 의도였다고 한다. 1968년 문을 열 당시는 식당 위치가 호구포 입구였다. 상호는 그저 포구 이름을 따 그대로 ‘호구포식당’으로 써 붙였다. 목이 좋아서 상밥 장사는 예상 밖으로 잘 되었다.
고객은 주로 논현초등학교 교사들, 소래염전 내근직들, 한국화약 직원들, 그리고 차량 기사들이었다. 조반을 들러 오는 사람도 있었고 저녁을 먹고 가는 손님도 있었다. 개중에는 하루 세끼를 다 사먹는 사람도 있었다.
안옥순씨는 ‘이때가 어수룩한’ 시절이어서 그랬다고 말한다. 어수룩하다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이것저것 별미의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는 의미와 함께 손님들의 구미(口味)도 순박해서 집에서 받는 밥상처럼 그저 할머니, 어머니의 구수한 손맛이 느껴지면 그것으로 족했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안옥순씨가 상밥을 내는 데 대한 나름대로의 지론이나 철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인의 정성이 어우러져 맛과 분위기 독특
“내가 먹는 밥이 아니라고 대강해서는 안 되죠. 정말 신경 써야 해요. 우선 손님이 상을 들여다볼 때 한눈에 들게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잖아요?”
상밥의 찬은 대략 6~7가지다. 그때그때 적당한 재료로 끓인 국과 김치, 나물이나 무침류, 김 같은 해조류 그리고 생선토막 등이 주를 이루는데 매일 한두 가지는 새로운 찬을 낸다. 여느 상밥집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그런 찬들이 주인의 세심한 정성과 어우러져야 그 집만의 독특한 맛과 분위기를 낸다는 사실이다. 정성은 이렇게 맛에 직결된다. 호구포식당도 그런 정성과 맛을 지닌 상밥집이었다.
잡 냄새없고 고기맛 좋은 소머리국밥 으뜸
그래도 이 집에 높은 평점을 준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소머리국밥 맛이다. 우선 그 품평이 잡냄새가 전혀 없고 썩 싱그럽다는 점이다. 고기는 씹히는 맛이 있고, 국물은 담백하고 구수해서 구복(口腹)이 흐뭇하다. 소주 반병쯤 반주삼지 않을 수 없다. 흔한 음식인데도 이런 가상한 국밥이 여기 있나 싶다.
다시 부활한 수인선 기차역은 이제는 호구포역으로 옮겨 멀어졌고, 그나마 밥을 대 먹던 20번 버스 기사들조차 다른 집으로 옮겨갔다. 남은 건 754번 버스뿐. 안옥순씨는 이제 이 모든 일이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아주머니 두 사람을 둔 것도 그런 까닭이지만. 그래서 그냥 하는 날까지 해본다는 생각이다. 45년이면 그 연륜이 그렇게 적은 것이 아닌데…. 언제 문을 닫을는지 모른다. 문의 (032)441-2966
글 _ 김윤식 시인 사진 _ 홍승훈 자유사진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