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스승이 스승답고 제자가 제자다운 사회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푸르른 녹색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나 봅니다. 참으로 풍요로운 세상입니다. 대자연만 풍요로운가 했더니,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상것들도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풍요속의 빈곤’이라고 했던가요! 어찌된 영문인지 전례없이 이 풍요로운 현대를 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왠지 자꾸만 비어가는 허전함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던 스승에 대한 신뢰와 위엄은 고사하고, 지금 우리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존경과 신뢰가 바닥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요즘 신문이나 뉴스에서, 제자가 스승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상식이요, 심지어 스승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기사뿐 아니라, 반대로 스승이 제자를 성추행하거나, 왕따를 그대로 방치해 어린나이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가슴 아픈 기사를 접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우리 사회에 스승과 제자 간의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진 독에 물새듯 흘러 새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흔히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고 말합니다. 지성의 요람이라고 하는 대학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점차 취직을 위한 장으로 전락해버린 곳에서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전락해버렸고, 삶의 지혜까지 가르치는 진정한 참 스승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단순히 지식 공급과 수요의 관계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극한으로 가고 사회가 혼란하고 무질서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도리가 없어지고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학교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스승이 스승답고, 제자가 제자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마음의 빛을 밝혀, 상대방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이지 환심(歡心)을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의 스승들은 올바르게 이끈다는 교육의 원칙을 잊고 환심만을 얻으려고 하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인격만을 주장합니다.

생명의 탄생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육체적 탄생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올바른 스승을 만나 마음의 빛을 열어가는 정신적 탄생이라 할 것입니다. 사부 일체(師父一體)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건, 우리 인생에 주어진 커다란 선물 중 하나입니다.

공자는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서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세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는데, 이는 그들 중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스승이라고 하면 대체로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훌륭하지 못한 사람도 모두 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겠지요. 이는 좋은 점을 가진 사람을 스승으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좋지 않은 점을 가진 사람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이미 2천500년 전에 적시한 명쾌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공자는 또한 여씨춘추(呂氏春秋)‘맹하기(孟夏紀)’편에서 스승의 역할이란 올바른 가르침, 즉 도리(道理)와 정의(正義)를 가르치고, 이 바탕 위에서 비로소 지식을 전수(傳受)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풍요로운 5월, 우리 자신에게 “내 가슴엔 더불어 한길을 가고 있는 스승님, 또는 제자가 살아 있는가?“ 라고 자문해 봄은 어떨런지요!

공 경 호 오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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