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간 매일같이 일기작성 시흥 토박이 주봉환 할아버지
“일기는 자기 얘기지. 길지 않은 세월에는 단순한 메모장일 수 있지만 먼 훗날 세월이 많이 지나면, 나 자신의 ‘역사’가 되는 거지.”
80여 년의 세월동안 매일같이 일기(日記)를 작성해 온 할아버지가 있어 화제다. 신안 주씨 31대 자손이자 평생을 시흥시 과림동 중림마을에서 농사를 지은 농사꾼이자 5대째 고향을 지키는 시흥시 토박이인 주봉환 할아버지(95)가 그 주인공.
올해로 ‘시흥’이라는 지명(地名)을 사용한 지 100년 되는 해에 시의 역사를 온 몸으로 겪어 온 주 할아버지의 일기는 고문서적 가치와 더불어 생생한 기록유물로서 관심이 몰리는 상황.
그러나 주 할아버지는 “6·25 난리통을 겪으며 포탄이 터지는 긴박한 상황에도 매일같이 일기를 썼는데, 지금은 많이 소실돼 생생한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주지 못해 너무 안타깝다”며 손사래를 쳤다.
주 할아버지가 이렇게 기록문화로서 가치 있는 일기를 계속 써 온 데는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며 살아온 이면에 한학(漢學)을 공부하며, 꾸준히 붓을 놓지 않은 문인으로서의 삶이 큰 이유가 됐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글을 쓰는 주 할아버지는 요즈음 대대로 살아온 고향 땅이 보금자리주택단지로 개발돼 사라지게 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굴곡 많은 한국사를 살아오며 마을, 길, 우물, 집터 등 전통이 살아숨쉬는 옛 터전 속에 살아숨쉬는 스토리를 옮겨놓은 주 할아버지의 일기가 오늘날 컴퓨터 자판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울리는 메시지는 바로 삶에 대한 진실한 통찰과 사랑이었다.
시흥=이성남기자 sun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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