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복지의 영역으로 들어온 기후변화

지난 1월 21일 고양시 한 다가구주택 반 지하 월세방에서 사회와 고립돼 살던 세 자매가 곰팡이 핀 작은 방에서 영양실조와 정서불안 등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로 발견됐다. 추위가 유난한 이 겨울에 고추장과 라면으로 연명하던 그들에게 난방은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작년 11월 전남 고흥의 한 조손(祖孫)가정에서는 여섯 살 소년과 부모 대신 손자를 키우던 예순 할머니가 잠을 자다가 숨졌다. 함께 잠자던 거동 불편한 할아버지는 심하게 다쳤다. 이 집은 반년동안 15만원의 전기료를 체납해서 전력제한조치를 받고 있었다. 제한적이나마 전기를 써도 되는지 그들은 몰랐다.

자연이건 인간사회건 온전히 평등한 세계가 어디 있으랴마는 에너지 소비만큼 극명한 게 또 있을까 싶다. 동물과 매 한가지로 사람도 살아가기 힘든 겨울에, 일그러진 가정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치 동면(冬眠)하듯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소비하는 그 많은 에너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우리나라가 지난 반세기동안 이룩한 경제성장은 자못 놀랍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선진국 그룹으로 분류되는 34개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아홉 번째고 1인당 GDP도 2만 불을 넘어서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전기를 포함한 에너지 소비 규모다. 2010년 기준, 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0.581 kWh/$로 일본의 0.203 미국의 0.353 보다 훨씬 많고 OECD 평균(0.334)의 1.7배에 달한다. 1인당 전력소비량에서도 한국은 연간 9천510 kWh/년으로 프랑스 7천894 일본 8천110 보다 훨씬 많아서 미국(1만3천268) 다음으로 세계 2위다. 그럼에도 대량정전사태의 경고음은 커져만 간다.

이 불편한 진실 정반대편에 ‘에너지 빈곤층(Fuel Poverty)’ 문제가 있다. 적정 난방온도, 연료비지출, 주거환경 등이 에너지 빈곤을 나타내는 일반적 지표로 쓰이지만 소득대비 연료비지출 비중을 살피는 것이 설득력이 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에 따르면, 2010년 최저생계 광열비 기준을 넘지 못하는 가구는 대략7%, 최소한으로 필요한 에너지소비량 기준을 넘지 못하는 가구는 8%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 2007년 한전, 가스공사 등 25개 에너지 기업기관과 공동으로 ‘에너지복지헌장’을 채택하고 2016년까지 120만 가구에 달하는 에너지빈곤층을 없애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목표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빈곤에 대한 합의된 개념이나 정책 대상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그 결과 에너지빈곤 가구는 오히려 더 늘어 130만 가구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올 겨울에도 이들에게는 사랑의 ‘연탄’이 배달될 뿐이다. 고효율 조명기기나 태양광, 도시가스와 같은 재생에너지 공급 서비스는 그들이 처한 낙후된 주거환경에서 보면 아직은 멀어 보인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한 기후변화의 양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강도 높게 빈발하는 자연재해 등 각종 피해와 비용부담은 불행하게도 사회적 취약계층을 향해 있다.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가격의 불가피한 상승은 저소득층의 에너지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다. 폭염과 혹한, 폭설과 집중호우에 무방비인 것은 열악한 그들의 주거환경일 터이다.

추위에 떨지 않고 취사에 필요한 에너지는 복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새 일상이 된 전력대란의 공포 속에서 전력공급확대의 목소리가 팽배해 있다. 발전소가 늘어나면 에너지빈곤층은 해소될까. 공급확대냐 수요관리냐 하는 에너지합리화 이전에 에너지의 인간화가 필요하다.

김 상 섭 인천광역시 환경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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