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복합용도건축에 대한 인식전환과 건축법 진화

1950년대 초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주상복합건물이 최초로 건축됐다. 20세기 저명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가 미래사회와 생활양식에 대한 비전을 건물로 표현한 것이다.

도시를 건축으로 압축하여 내부에 상업가로가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 d‘ Habitation)이라 불리는 공동주택용 건물이다. 옥상에 수영장과 유치원까지 갖추고 있어 당시로는 매우 새로운 공간 프로그램이었다.

저소득계층을 위한 최대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목표로 건축가의 위대한 상상력이 현실화된 창작물이다. 당시 서구의 도시계획은 용도지역의 구분으로 주거와 상업, 업무 등 도시 공간은 분리된 계획이 일반적이었고, 이후에도 세계 대도시들의 확장은 용도지역의 지정과 생활기능의 공간적 분리가 보편적이어서 한동안 르 꼬르뷔지에의 복합용도 주거건물은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산업사회는 일터와 주거가 분리되고, 성역할에 따라 도시 내 여성과 남성의 공간 또한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계획은 20세기 말부터 문제점들이 논의되면서 복합용도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식기반 정보화 사회는 융복합과 창의적인 결합이 화두이다.

새로운 생활문화를 창조해내는 신인류는 새로운 생활공간을 필요로 하고 도시공간사용은 변화한다. 종전과 같은 용도지정은 무의미하고 원스톱 복합용도 시설이 자연스럽게 요구될 수밖에 없다. 디지털사회의 생활시간은 압축적이며, 물리적 거리 또한 압축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도시계획은 지역지구의 용도와 용적률의 차등화 등으로 창의적인 복합용도를 제안하기에는 제약조건이 따른다. 사례가 없는 혁신적인 복합용도를 건축가가 제안해도 현행법 내에서는 실현이 어렵다. 사용자들의 생활문화를 제안하고 미래 시민들의 생활이 발전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들이 사장되는 현실이다.

도시재정비 계획에서는 새로운 용도 부여와 복합용도의 필요성을 건축가와 관련 공무원들이 공감하면서도 조닝변경에는 소극적이다. 용도 변경과 용적률 상향조정으로 지가상승에 따른 위험 부담을 담당 공무원들이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오해와 불신을 벗고 건축가와 관련 공무원들이 미래 생활공간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함께 탐구하고,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현해 나가는 선진국형 도시계획 체제로 탈바꿈해야한다.

네덜란드 헤이그 근처의 작은 도시 리즈위크(Rijswijk)에는 기차역과 도서관이 작은 광장을 공유한 복합시설로 계획되어 있다. 자전거보관소도 물론 함께 사용한다. 이 작은 도시의 시민들 생활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복합공공시설이다. 기차역과 도서관의 복합은 흔하지 않은 결합이다. 그러나 실지 시민들의 생활을 읽고, 필요한 용도를 복합하는 것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생활문화를 토대로 태동된다.

우리나라 전국의 도시에 모두 같은 형식으로 과다 공급된 문화시설, 인구분포의 변화로 용도가 사장되어가는 교육시설, 대학의 운동장 등은 과감한 용도 전환이나 다른 기능과의 복합화가 요구된다. 생활문화의 진화는 생활공간의 변화와 역동적으로 순환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활변화를 토대로 미래사회에 대한 혁신적 사고와 창의적으로 공간적 용도를 결합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정관념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운 복합용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김 혜 정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 한국여성건설인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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