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기리는 문화예술의 향연, 선생의 가치를 알리다
율곡 선생은 1536년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사임당 신씨가 율곡을 낳던 날 밤, 검은 용이 바다에서 침실로 날아와 아이를 안겨줘 어릴 적에는 ‘현룡(見龍)’으로 불렸고, 훗날 ‘율곡(栗谷)’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호는 자신이 성장한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서 따온 것이다. 이처럼 율곡 선생의 본향(本鄕)이며, 문향 파주(文鄕 坡州)의 근간인 파주지역에서 지난 10월 13일부터 14일까지 뜻깊은 축제가 열렸다. 파주가 낳은 대선현 율곡 선생을 추앙하는 ‘제25회 율곡문화제’가 바로 그것.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율곡선생유적지에서 펼쳐진 문화제는 조선 중기 선현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에 충분했다.
# 율곡 선생의 유덕을 기리다
율곡고등학교에서 율곡선생유적지까지 이어지는 유가행렬 재연ㆍ시민 길놀이가 ‘제25회 율곡문화제’의 화려한 막을 올렸다. 율곡선생이 구도장원 후 귀향길을 재연한 유가행렬에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예년과 다르게 참가자들은 미리 주문받았던 재미있는 분장을 하고 율곡 선생의 가치를 알아가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어 율곡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자운서원(경기도기념물 제45호) 문성사에서 선생을 추모하는 ‘추향제’가 열렸다. 추향제는 집례관의 참홀에 따라 초헌관 이재율 경기도 경제부지사, 아헌관 이명세 파주시 노인회장, 종헌관 기우남 여충사 도유사 순으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봉행됐다. 이어 권종인 파주시장 부인, 이평자 파주시의회 부의장, 종헌관 이상면 성균관 석전교육원 겸임교수 순으로 헌작을 하는 신사임당 추향제도 이어졌다.
추향제가 진행되는 동안 눈에 띄는 단체가 있었다. 이번 문화제의 꽃인 ‘이야기로 만나는 율곡기행’에 참가한 200여 명의 참가자들. ‘이야기로 만나는 율곡기행’은 파주문화원 소속 문화해설사 15명이 율곡 이이 선생의 발자취를 유적지 현장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로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오랜 시간 율곡선생의 생전 모습이 담겨 있는 유적지가 파주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타 지역민은 물론 파주지역 신도시에 둥지를 튼 시민들조차 이를 잘 알지 못하고 있어 뜻깊은 기행이 마련된 것이다.
오전 9시에 모인 기행단은 오전 추향제에 참여한 이후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제자들과 시와 학문을 나눴던 화석정, 율곡 선생이 자란 율곡리마을, 파주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원인 파산서원을 둘러봤다.
장작 7시간 동안 진행된 기행에서 이들은 화석정의 유래를 시작으로 밤나무골 이야기, 임진강을 밝힌 화석정, 효성이 깃든 시묘살이, 화석정과 우계를 오가며 쌓은 우정(友情) 등 500년을 이어 온 이야기들을 만나며 민족사를 빛낸 율곡 이이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서교송 파주문화원 사무국장은 “율곡문화제가 제례만 지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율곡 선생을 알리는 것이 중심”이라며 “율곡선생이 자라고 누워있는 이곳에서 방문객들이 끌려가는 행사가 아닌 자신이 직접 참여해 행사를 이끌어나가는 문화제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 율곡 선생과 통(通)하다…다양한 문화예술의 향연
율곡선생의 제례를 마치고 다양한 행사가 마련돼 있는 율곡선생유적지 내 잔디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 몇 분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율곡 선생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파주 설화를 보며 그림에 맞는 지역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파주이야기’를 진행하는 문화해설사였다. 국학지능원에서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수업을 받고 있는 이들은 파주 역사 속 이야기, 옛날 미담 등을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들려줘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 시험을 보는 듯한 전국한시백일장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졌다. 장원급제를 위해 화선지를 깔고 먹을 가는 청년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백발노인들이 자리를 메웠던 것. 포부만큼은 젊은이들 못지않았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백일장 참가자들은 율곡 선생의 주옥같은 글을 되새기며 온고지신의 지혜를 자신의 글 속에 풀어냈다.
백일장에 참여하기 위해 대전에서 올라 온 박병성씨(68)는 “율곡선생의 뜻을 기리며 애국정신을 주제로 글을 써내려갔다”면서 “수상 여부를 떠나 선생의 훌륭한 학식과 인품을 느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전했다.
이어 마당을 쓰는 빗자루만큼이나 큰 대붓으로 율곡선생의 글귀를 써내려가는 서예퍼포먼스가 진행될 때에는 관람객들이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몰리며 장사진을 이뤘다.
이밖에 파주역사, 파주의 인물을 맞추는 장원급제 퀴즈대회, 율곡백일장·사임당 미술제, 전통예절 배우기, 사물놀이 배우기 등의 관광객 참여행사와 국악뮤지컬 갈라 ‘효녀심청’, 서원음악회, 국악한마당 등의 공연이 펼쳐져 관람객들은 율곡 선생을 기리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예술의 향연을 누렸다.
# 율곡문화제, 세계로 향한다
율곡문화제가 올해로 25살 청년이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른 지역 축제나 문화제처럼 규모가 크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율곡선생이 잠들어 있는 이곳 파주가 지역적 특색상 교통이 불편한 탓에 율곡선생 유적지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의 율곡문화제에도 해 뜰 날이 기다리고 있다. 내년 파주의 동서를 연결하는 56번 도로가 개통되면 운정신도시, 서울지역, 강원지역에서의 접근성이 좋아져 율곡 선생을 알고 싶은 이들이 언제든지 이곳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6월 파주시가 율곡선생 관련 학술대회를 열고 이를 토대로 율곡선생 유적지를 국가사적 승격을 추진하면서 율곡선생 유적지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감출 수 없다.
파주문화원이 율곡 선생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야심차게 기획했던 ‘율곡문화제’가 지역민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제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된 순간이 머지 않았다.
우관제 파주문화원장은 “현재 경기도문화재인 율곡선생 유적지를 국가문화재로 업그레이드 하려고 준비 중”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율곡선생의 유덕을 기리는 문화제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리고 파주를 문화의 도시로 알리는데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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