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책향기 가득한 도시
인구 1천220만명 살고 있는 경기도내 31개 시·군 가운데 공공도서관 이용률이 가장 높은 동네는 어디일까? 100만 인구를 자랑하는 수원시일까, 아니면 출판단지가 있는 파주시일까.
정답은 바로 29만명의 책벌레들이 살고 있는 ‘책의 도시’ 군포시다. 군포시청 1층 로비에 가면 그 흔한 단체장의 치적을 홍보하는 화려한 상패나 정형화된 사진을 볼 수 없다. 대신 가장 먼저 ‘책’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10월 6천여권의 책을 갖춘 북카페 ‘밥상머리’가 들어서면서 시청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시청로비가 도서관인지, 어린이집인지 착각할 정도다. 군포시민들에게 시청은 곧 도서관이요, 휴식공간인 셈. ‘군포’하면 ‘책’, ‘책’하면 ‘군포’를 생각나게끔 만든 장본인, 김윤주 군포시장을 8월 20일 오전 집무실에서 만났다.
막연하게 생각되던 군포시의 책관련 시책들은 신생아부터 군인, 노인, 시각장애인, 다문화가정까지 그 대상과 내용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
독서 조기교육(?)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는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자’는 취지로, 매년 군포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에게 그림책과 출산축하용품을 전달하고 도서회원카드를 발급해준다. 매년 3천400여명의 신생아들이 그 혜택을 받고 있다. 도서관 이용이 어려운 임신 8개월 임산부와 산후 12개월 미만 산모와 신생아에게 책 배달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 시는 지난해부터 매년 책 한 권을 선정해, 릴레이 도서로 제공하고 시민들이 함께 토론하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예 ‘거실을 서재로’ 바꾸자는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게다가 다문화가정을 위한 건강가정지원센터와 다문화 도서관을 만들어 도서 400권을 비치하는가 하면 노인복지회관에는 눈이 침침한 어르신들을 위해 글자크기 15포인트의 큰 글씨 도서 200권을 보급했다.
이뿐 아니라 시각장애인과 어른신들을 위해 오디오북 1천 개를 보급하는가 하면 군포시에 유일하게 위치한 공군부대에도 병영문고를 설치해 군인들의 책읽는 문화 조성에 발 벗고 나섰다.
시는 오는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군포시 산본동 중심사업지역 일원에서 ‘제2회 북 페스티벌’을 개최해 가을날 군포를 책의 물결로 뒤덮을 계획이다.
이처럼 알토란 같은 책 읽기 장려 사업들이 군포시 곳곳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전폭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김윤주 시장이 ‘책 읽는 군포’를 민선5기 역점시책으로 정하고, 지난 2년간 독서환경 개선 사업에 매진해왔기 때문.
그렇다면 김 시장은 왜, ‘책으로 군포를 변화시키고, 사람을 키우겠다’고 결심한 것일까.
경북 예천 산골에서 자란 김 시장은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7남매의 장남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낮에는 논밭에 나가 집안 일을 도왔지만 저녁에는 외삼촌이 운영하는 작은 책방을 찾아가 무조건 책을 읽었어요. 배고픈 사람이 허겁지겁 밥을 먹듯이 말입니다. 친구들이 부러워 별의별 생각을 많이 했는데, 책이 있어 견디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김 시장에게 책은 인생의 스승이자, 동반자였다. 또 살아갈 용기와 지혜를 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그리고 책 한 권의 힘을 믿으며 결심했다. ‘비록 학교에 다니진 못했지만 또래 친구보다 더 많이 책을 읽고,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되자’고.
김 시장은 여섯 동생들을 돌보면서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했던 유년시절엔 ‘삼국지’를 읽었고, 서울로 올라와 노동운동시절엔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키웠다. 시장이 되고 나선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읽는 등 책과 평생을 함께 하고 있다. 요즘도 짬날 때마다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고 있다.
“취임 초, ‘책 읽는 군포’를 만들겠다고 하자 임기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저처럼 어려워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가 없게 만들고, 누구나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의 이로움을 많은 정치인이나 자치단체장이 알고 있으나 실제로 책 읽기를 장려하는 사업은 선뜻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업 성과가 오랜 세월이 지나야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장기적으로 책 읽기 장려 사업은 가족의 행복, 지역사회 발전, 사회문제 해결 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건전한 투자라 생각합니다.”
김 시장이 책 읽기 사업에 올인하는 이유이자,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다.
누구보다 책 한 권이 귀했던 김 시장은 지자체 중 최초로 전담팀인 ‘책읽는군포팀’을 만들어 운영할 만큼 책과 관련한 행정에 유독 정성을 쏟고 있다.
마을 구석구석까지 도서관 ‘독서천국’ 실현
김 시장은 무엇보다 책 읽는 소리로 군포가 시끌벅적해지려면 독서 인프라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인프라 확대사업을 대대적으로 시행해 누구나 언제든 손만 뻗으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 중이다.
현재 군포에는 5개의 시립도서관 외에도 24개의 작은도서관 등이 설치돼 있다. 여기에 더해 내년 5월이면 부곡지역에 또 하나의 도서관이 들어선다. 중·장기적으로 작은도서관을 40개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특히 정부가 정한 ‘독서의 해’인 올해 군포시의 독서관련 시책은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제17회 독서문화 시상식’에서 군포시가 공공부문 최고상인 국무총리표창을 받은 이래 올들어서는 군포시중앙도서관이 경기도의 ‘2011년 도서관 운영 평가’에서 최우수 도서관으로 선정되는 등 책 관련 분야에서 ‘책의 도시’ 군포가 정부 최고의 상을 수상함으로써 대외적으로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상 자체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 단지 시장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취업 면접을 갔을 때 ‘군포에서 왔다’는 말만하면 더 묻지도 않고 합격시키는 미래, ‘책 읽는 군포’에서 자란 아이는 인성이나 실력을 믿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환경조성 및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중간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김윤주 시장은 보여주기식 혹은 업적남기기식 행정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1998년 민선2기에 처음 시정을 책임질 때부터 오로지 사람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해왔다. 김 시장은 이를 가장 큰 업적이라고 정리했다.
“아이들에 대한 투자 효과는 30~40년이 지난 후에 나타납니다. 솔직히 인내심이 요구되는 거죠. 군포의 경우, 꾸준한 노력끝에 지난 2005년 12월 민선3기 때 정부로부터 청소년교육특구로 지정됐습니다. 민선5기 들어서 추진된 무상급식 중학교 전학년 확대나 군포·안양·의왕 3개시 공동친환경 급식지원센터 설립추진, 도서관 증설 및 교육 프로그램 강화 등 ‘희망교육 1번지 군포’ 건설을 위한 사업들도 결국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겁니다.”
이밖에도 안전도시를 위해 군포지역 내 방범, 초등학교 보안, 버스정보시스템 등 9종 735대의 CCTV를 통합관제하는 시스템을 지난 5월말 구축했으며 지역경제의 다양성과 첨단화를 꾀하기 위해 부곡지역에 첨단산업 단지를 조성 중에 있으며 이 사업은 당동·당정동 공업지역 정비와 대규모 고용창출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군포시 거주 어르신 1천500여명 이상이 군포시니어클럽, 군포시노인복지관,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군포시지회를 통해 노인 일자리 사업 및 각종 지역경제 활동에 참여 중이다.
바쁜 시정업무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는 ‘낙제점’을 받고 있지만 김 시장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불편한 점을 해소해주는 삶 자체가 뜻깊은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책 읽는 도시의 아이는 마음이 건강하고, 어른은 인생이 지혜롭고, 도시는 비전이 넘칩니다. 지금 저는 책으로 사람을 키우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앞장서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시정에 임하고 있습니다. 훗날 군포시민들이 ‘김윤주는 책으로 세상을 바꿨다, 우리 아이들이 잘 자라는데 김 시장이 일조를 했다’는 말을 해주신다면 정말 기쁘고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날을 위해 앞으로도 항상 제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김윤주가 되겠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온 세상에서 무슨 소리가 가장 맑을꼬, 눈 쌓인 깊은 산속의 글 읽는 소리로세”라고 말했다.
책으로 꿈을 키우며 성공한 김윤주 시장이, 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리, 책 읽는 소리로 군포를 흔들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글 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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