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졌을 때이다. 우리나라 선수가 경기에서 지면 매우 안타깝다. 그때, 선수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시합에서 더 잘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등수보다는 개별 선수가 어떤 자세로 시합에 참가했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존경할 수 있는 스포츠 지도자가 탄생한다.
그런데 안타까울 때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분명히 안타까움과 화는 다른 감정임에도 안타까운데 화를 낸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된다. 하나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구분하고,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훈련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 또 하나는 일등만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일등 추구의 경쟁지향 분위기 벗어나
전자와 관련해, 우리는 감정 표현에 매우 서툴다. 당황한 것과 서운한 것, 그리고 속상한 것은 서로 다른 감정들이다. 그럼에도 속상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과의 축구시합에서 승부차기를 하는데, 우리나라의 마지막 선수가 실축을 하면,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다. 안타까운 감정과 화를 내는 감정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좌절했을 때, 스스로 달래고 또 다시 노력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우리나라의 경쟁지향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비단 스포츠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공부를 해야만 큰 인물이 되고,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자주 듣는다. 해서 공부에서 앞서가기 위해 노력한다. 초등학교에 입학 하기 전부터 각종 학원을 전전하며,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토익이나 토플 점수를 올리기 위해 또 학원을 다닌다.
노력하는 모든 이가 인정받아야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일등을 못하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방향을 설정할 수가 없다. 일등만 되라고 배운 사회에서 일등이 못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과적으로 공부나 스포츠에서 일등을 못하면, 이 사회에서 건전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겪는다. 자신의 삶을 다양한 영역에서 실험해 보고, 인생 행로를 결정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면 곧 자신의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생은 성적이 높다고 해서 성공하거나 실패하지는 않는다. 일등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등하는 사람만이 잘사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회이다. 인생이 일등인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노력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포기하고 좌절하고 싶을 때 한 번 더 뛰는 자세, 쓰려졌을 때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것, 자신이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자신과 경쟁하는 것 등을 통해 끝임없이 자기 분야에서 앞으로 전진한 결과이다.
이제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일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학생,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런 자세를 배워야 한다. 자신의 이상을 설정하고,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에 나설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한다. 일등한 선수, 일등하는 학생만이 아니라,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희망해 본다.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