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내 안에 적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움직임이 바쁘다. 지난 대선에서도 박근혜 대표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주목됐지만, 정작 그녀의 적은 상대 당이 아니고, 같은 당 내에 있었다. 결국 그녀는 대통령후보자리를 내주고, 당내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야 했다. 반면 지금은 그 입장이 뒤바뀐 느낌이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가장 선두에서 당을 이끌어가야 할 당 출신 의원들에 대한 제명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멀고 멀건만, 정작 그 발목을 잡는 장애물은 그 안에 있었다. 국가적으로도 다를 것이 없다.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 국가 전체의 역량을 발휘해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국제관계에서 때로는 국내에서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분열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파견된 조선의 사신단은 일본을 둘러본 후, 동인과 서인이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똑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왜 견해를 달리했어야 했는지. 결국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시키거나 과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부의 분열, 가장 치명적인 적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념적으로 좌와 우를 나누어 이야기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물론 개인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이념상 분류가 가능하고, 그에 대한 비판과 발전적 토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러한 것에 대해 오히려 순기능적 역할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좌와 우를 일방적으로 나누고, 모든 사람들이 경계선 좌우측으로 분리돼야 한다고 본다면,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에는 분열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며 특히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내부적 분열이야말로 진정한 적일지도 모른다.

사안을 달리해, 요즘은 임기말을 앞둔 대통령의 측근과 인척들의 비리도 문제되고 있다. 이러한 측근과 인척의 비리 문제는 이제는 너무 익숙해, 별로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 사례가 되고 말았다. 민주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본직은 깨끗하게 국정을 수행하려고 노력해왔다고 하지만 비리, 뇌물, 뒷거래 등의 문제는 주로 측근과 가족에게서 터져나오곤 했다. 가장 믿었던, 그리고 가장 대통령을 잘 보좌해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대통령의 국정을 방해하는 비리가 발생하곤 했던 것이다. 이 또한 적이 멀리 있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대선 앞둔 시점, 분열 아닌 통합을

베트남전쟁을 대상으로 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플래툰’은 마지막에 영화배우 찰리 쉰의 대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린 적이 아닌 우리 자신과 싸웠다. 적은 우리 안에 있었다’ 이 영화를 본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대사를 잊을 수가 없다. 전쟁을 치뤄야 하는 군인으로서, 적군이 아닌 아군에 적이 있다니. 어쩌면 가장 큰 적이야말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내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의미의 예언은 2천년 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계속 평화로울 수는 없다. 국외에는 적이 없다 해도 국내에 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했던 칭기즈칸의 후예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언제까지 영화로울 줄 알았던 로마 제국도 결국 패망했다. 그런데 그 패망의 원인은 늘 내부에 있었다.

결국 정치에서든, 국가에서든 강해지고 안정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화합하고 단결할 필요가 있다. 내부적인 분열은 그 어떠한 외부의 적보다도 더 치명적인 적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내부적으로 하나가 된다면, 어떠한 외풍도 이겨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안으로 더 소통하고, 화합하며, 의지와 결의를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론이 분열되기보다는 전 국민의 대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화합의 터전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이재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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