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 말 그대로 땅속에 자리 잡은, 자연과 풍경을 훼손하지 않고 설계된 미술관이다. 세토대교를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한 섬, 일본의 나오시마에 있다. 작년 가을에 가보려고 했지만 매진되어 참가하지 못했다. 지난달, 1박2일짜리 주말 전세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생각했다. 왜 수많은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일본의 시골 섬마을을 찾는 것일까.
안도다다오(安藤忠雄)라는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 때문일까. 아니면 미술관의 모네 그림 때문일까. 한적한 오카야마의 시골공항을 나서, 섬의 미술관에 도착할 때까지도 내내 같은 생각이었다. 과연 인천 앞바다 섬들의 문화와 관광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바다의 역, 지중미술관, 베네세 하우스, 이우환 미술관 등. 그래. 우리의 세계적인 화가 이우환을 위해 친구인 안도가 직접 건축했다는 이우환 미술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자.
그러나 지중미술관을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미술관으로 가는 입구 근처에 모네의 그림 그대로 연못을 만들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만발했다. 담백하게 처리된 입구를 지나 모네의 대작 ‘수련(Water Lily)’이 우리를 반겨준다. 전시된 수련은 말년에 모네가 백내장과 투병하면서 그린 2×6m 크기의 대작이다. 이 작품을 구입하면서 지중미술관을 구상했다고 한다. 모네를 19세기 유명한 인상파 화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으로 해석하기 위해 2명의 랜드 아티스트를 초대했다.
자연과 조화 이룬 지중미술관 보며
현대미술가 마리아(Walter De Maria)와 터렐(James Turrell)이 바로 그들이다. 미술관의 설명에 의하면 그동안 예술작품은 현실의 세계를 상대로 미술이나 조각 등으로 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져 왔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세계는 현실과 미술을 만드는 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자연에 직접 접근하는데 그 중요성이 있다고 한다. 건축가 안도와 모네 그리고 랜드 예술가 2인의 작품은 자연을 새롭게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연을 빛과 색채, 형태로 바꾸어, 각각 독자적인 방법으로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설립자이자 미술관의 관장인 후쿠다케는 왜 이런 미술관을 구상한 것일까. 그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장소’를 추구하고자 했으며, ‘아트는 자연 가운데 존재해야만 한다’는 신념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건축과 환경이 나아가야 할 본연의 자세를 물으면서, 세토내해의 자연을 재생하기 위해 위대한 작가 4명을 초대했다는 섬, 나오시마. 지중미술관의 지하 2층 탁 트인 카페에서, 세토내해의 푸른 바다를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인천 앞바다에는 155개의 섬이 있다. 그러나 무의·용유도는 이런저런 계획과 거대프로젝트로 휘둘림을 당한지 20년이 넘는다. 굴업도는 골프장 논쟁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강화도와 신도 등은 조력발전 논쟁에 갇혀 있다. 계양산의 골프장을 폐지하고, 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에 반대하는 해당 기업의 입장도 여전하다. 글로벌을 내세우는 기업들조차 부동산 개발과 카지노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에 밀린 우리의 예술 안타까워
모두들 말로는 소프트 파워의 시대라고들 한다. 입만 열면 너도나도 문화·예술·관광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내세우는 곳마다 술집과 포장마차, 그리고 정체불명의 음식점들이 문화와 관광의 이름으로 판을 치고 있다. 인천에서도 시립미술관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어떤 정신과 예술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런 시립미술관은 어떻게 누가 건립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미술관조차도 지역부동산 정책과 재개발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되묻는다. 왜 우리의 섬과 예술에는 지중미술관의 정신이 없는가.
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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